독립운동가 집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사자성구로 의역을 해보면 '은악양선(隱惡揚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은악양선'에 대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해석은 원불교의 3대 종법사였던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1914~1998)로부터 들었던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은악(隱惡)은 남의 잘못을 숨겨 주어서 음덕을 베푸는 것이요, 양선(揚善)이란 남의 잘한 일을 널리 드러내 주어 권선(勸善)하는 것이다".
친일행위와 독립운동을 각각 여기에 대입해 본다면, 독립운동을 한 집안을 발굴해서 그 희생과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 후손들에게 할 수 있는 대로 국가와 사회가 보상해 주는 일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건국부통령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1869~1953) 선생의 며느리인 서차희(99) 여사가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장애인 딸과 같이 살면서, 선생의 묘를 돌보고 있다는 신문보도는 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해서 건국 60주년을 맞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밖에 대접할 수 없단 말인가.
독립운동을 하느라고 가장 돈을 많이 쓴 두 집안을 꼽는다면 성재 선생 집안과,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 선생 집안이다. 성재는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서, 서울의 유명한 소론(小論) 명문가였다. 재상도 10명 넘게 배출하여 이 집안에는 '상신록(相臣錄)'이라는 문건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현재 서울 명동 성당 앞의 터 수 만 평이 원래 이 집안의 소유였다. 이 집안이 독립운동에 바친 재산은 약 3만석이다. 지금 돈으로 치면 3000억~5000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이 돈을 가지고 만주에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허왕산은 의병대장으로 싸우다가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 된 양반이다. 서대문 형무소 제1호 사형수이다. 이 집안은 경북 선산, 구미 일대에 3000석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평지가 적고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경상도에서는 전답이 귀하다. "경상도 3000석은 전라도 3만석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 3000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썼다. 심지어는 조상 제사를 지내기 위한 위토(位土)까지 팔아서 독립운동에 썼다. 이런 집안 후손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챙겨주어야 한다.
2008.04.18 22:05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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