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조용헌 살롱

第子福

수로보니게 여인 2008. 4. 28. 16:35

 

 

  第子福

 

    '선생복'도 있지만 '제자복'도 있다.

    선천(先天)의 첫째 인연이 부모자식 관계라면, 후천(後天)의 첫째 인연은 사제관계다.

    제자복이 있는 팔자는 어떤 팔자인가? 먼저 인품과 실력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인격적으로 아랫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고, 그 분야에 깊은 실력이 있어야 배우려는 사람이 따른다.

인품과 실력이라는 필수항목 외에 플러스 알파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팔자에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 있는가의 여부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잘 키운다.

잘 키운다는 것은 '꼴'을 잘 본다는 말과도 같다.

식신과 상관은 무엇인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많이 줄 수 있는 기질을 뜻한다.

식신과 상관이 많으면 인색하지 않다.

스스럼없이 자기 것을 빼서 남에게 준다. 설기(泄氣:기를 빼준다)하는 능력이 강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 몸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축적된 지식이나, 경험, 인맥, 그리고 때로는 재물까지도 제자에게 준다. 식신과 상관이 없으면 자기 것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베푸는 데 인색하다. 자연히 제자들이 따르지 않는다. 제자에게 자기의 간(肝)을 빼주어야 스승이 된다.

스승의 간을 받아먹은 제자는 스승을 잊을 수 없다. 설령 스승을 배신하고 백 리가 넘게 도망을 갔더라도, 도중에 다시 되돌아온다. 스승이 자기에게 간을 빼서 주었다는 은혜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제관계를 인도의 라즈니쉬는 '위대한 도전'(Great challenge)이라는 저서에서 '연인'(lover)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서로 그리워하는 관계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는 아무나 키울 수 없는 법이다. 어떤 분야든지 제자를 많이 두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제자꼴' 보기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 제자복이 많았던 인물을 간추려 보면 면앙정(?仰亭) 송순(宋純·1493~1582)이다.

고경명, 기대승, 임제, 정철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송순의 회방식(回榜式:과거 합격 60주년) 때에 80세가 넘은 스승을 자신들의 손가마에 태우고 면앙정 언덕을 내려왔다는 유명한 고사가 바로 그 제자복을 말해준다. 멘토 만나기도 어렵지만 멘티(mentee) 만나기도 쉽지 않다.    


         

    

 

    전남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담양 소쇄원은 중종 시대의 문관 양산보(梁山甫)가 건립한 정원 별장으로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돼 있다.

소쇄원에서 가까운 곳에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면앙정을 건립한 사람은 양산보와 내외종 형제간이며 명조 때 이조참판, 대사헌을 지낸 시조문학의 대가 송순(宋純, 1493~1583년)이다. 송순의 본관은 신평이며 자는 수초(遂初), 호는 면앙정, 기촌(企村)이다.


면앙정(자료: 문화재정보센터)


그는 21세 되던 해 진사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 학사로 문명을 떨쳤다. 기묘사와가 일어난 1519년 과거에 급제, 조광조의 도움으로 조정에 발탁되어 벼슬길에 나갔다. 송순은 그 후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31세 때 부친상을 당해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왔는데, 그 때 면앙정 터를 구입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 정적인 김안로 일파가 정권을 장악했고, 송순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면앙정을 지었다.

당시에는 기와지붕이 아닌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송순의 대표 시조에...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여
초려(草廬)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라는 유명한 시조가 전해오는데 이 시조가 바로 면앙정을 노래한 것이다.

송순의 행장에 보면 그는 젊어서부터 바둑을 좋아하여 80세의 나이에도 친지들과 바둑을 두고 활쏘기를 했으며, 책을 보고 글을 지으면서 90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1552년(명종7년) 송순이 ‘선산도호부사’가 되었을 때 담양부사 오겸이 면앙정을 개축했는데, 당시 호남의 명사인 기대승, 임제, 임억령, 김인후, 박순, 고경명 등이 면앙정 개축을 축하하기 위해 「면앙정기」「면앙정부」「면앙정시」를 지었다.

송순이 87세 때인 1579년, 면앙정에서 과거 급제 60주년을 기리는 회방연(回榜宴)을 열었는데, 그 잔치에 선조임금이 축하의 꽃과 술을 하사했으며 축하객이 1백여 명이나 되었다. 밤이 깊어 술에 취한 송순이 귀가하려고 하자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등 일류 명사들이 자청해서 가마를 멨다고 한다.

바둑을 좋아했고 술을 좋아했던 송순은 시조문학의 대가로 손꼽이고 있다. 그의 시조 몇 수를 감상해보자.


(자료: http://planet.daum.net/pcp/Gate.do?daumid=bsw5811)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휘젓는 봄을
새와 무삼 하리오.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리.
도리(桃李)야! 꽃이 온냥 마라.
님의 뜻을 알 쾌라.

위의 시조는 옥당가(玉堂歌)라고 불리는데 아래와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명종임금이 하루는 어원에 핀 국화꽃을 옥당관에게 내리시며 노래를 지어 올리라고 명했다.

옥당관이 스스로 노래를 짓지 못하고 마침 숙직하고 있던 송순에게 짓게 해서 임금께 올렸다.

임금이 이 시조를 읽고 탄복하며 누가 지은 노래냐고 물었다.

옥당관이 사실대로 아뢰자 명종임금이 송순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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