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신춘문예] 염전에서 시조 당선작/김남규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당선소감… 시조로 소외된 사람들 어루만질 수 있다면… 5년 전이었습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대체로 나간 시조백일장에서 난생 처음 쓴 시조로 우연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습작하고 있는 시조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시가 스스로 걸어서 제게로 온 듯합니다. 밤마다 수없이 울음을 삼켜가며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포기를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왜 제게 시조가 걸어왔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가진 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역사라면, 못가진 자와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선생님께서 늘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소외된 자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지금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의 아픔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중한 작업이 그들에게 뜨끈한 밥 한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봅니다.
◆심사평… 빈틈 없는 구성… 시적 감도 높여줘 / 이근배 시인 새벽의 언어를 캐기 위하여 밤을 밝혀온 생각들이 시조의 높은 가락을 뽑아 올리고 있다. 신춘문예의 벽을 오르기 위해 모국어의 틀 속에서 오늘의 삶을 깎고 다듬는 손길들이 섬세하고 맵차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응모작품들이 거의 고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음이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구성요소를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자재롭게 글감을 찾고 거기 맞는 가락을 짜내는 일에도 능숙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해 겨울 갯벌에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추상성이 걸린다. “그 해 겨울”이면 “갯벌”의 지명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평시조의 시행을 산문형으로 이어나간 것도 거슬렸다. ‘감나무 합창’은 너무 정직하게 형식미를 지킨 것이 오히려 시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임을 깨우치기 바란다. ‘겨울 쑥부쟁이’는 시를 구성하는 맛이 탄탄하다. 그러나 진술적 낱말들이 자주 튀어나온 것이 시의 감도를 떨어트리게 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염전에서’에게 낙점을 주었다.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의 첫 수 초장에서 “가슴엔 뱃고동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의 마지막 수 종장까지 소금밭을 배경으로 “서산댁”을 내세운 삶의 포착을 외연성과 내포성이 알맞게 결구하여 시조가 갖는 시적 감도를 높여주고 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빈다. ================================================================================================= 봄 길
동시 당선작/ 김영민 햇살이 놀고 있는데
어서 와 어서 와. ◆당선소감… 늘 배우는 자세로 쉽게 읽히는 작품 쓰고파 / 김영민씨
◆심사평… 단순 명쾌하고 童心 잘 깃들어 있어/ 박두순 아동문학가 동시는 ‘동심 읽기’를 잘 해서 써야 한다. 좋은 시적 표현에다 동심이라는 옷을 잘 입혀야 한다. 그래서 동시는 특수한 문학 장르이다. 그 때문에 동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아무나 쓰는 글이 아니다. 무르익은 시 쓰기 능력을 가져야 좋은 동시를 빚을 수 있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 원형질적인 마음이다.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그런 심성이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런 심성은 단순함에서 온다. 어린이는 단순하다. 단순한 것은 명쾌해 보인다. 따라서 동시는 단순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동시가 단순명쾌하려면, 시적 스토리와 주제의 분명함에다 압축 절제돼 있어야 하고, 동심이 깃들어야 한다. 시어 하나만 빼 버려도 시가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압축, 절제돼 있다. 따듯한 햇살이 내리는 봄 들길에 민들레 개나리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오는 광경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모습이다.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감각적인 시가 이런 의미에 둘러싸여 오히려 빛난다. ‘나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같은 시어로 동심 읽기에도 소홀함이 없다. 이게 이 신인의 역량이다. 정진해, 동시문학의 탑 쌓기에 돌 하나 얹기 바란다. ================================================================================================= 깜나리 동화 당선작/장보영
“교무실에 새로 온 여자애가 있는데, 좀 이상해!” 누가 전학을 오든 상관없다. 그저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왜 이 시골 촌구석까지 와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같은 문제아는 없어 보인다. 나는 서울에 살다 왔다. 서울 선생님은 나를 문제아라고 불렀다. 아이들을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툭하면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했다. 난 그냥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집에 가고 싶을 때 간 것뿐이다. 이게 문제라면 문제였나 보다. 선생님께 미리 말씀만 드리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웬만큼 할 수 있다. 오늘은 어젯밤 12시까지 만화책을 봤으니 하루 종일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앞을 보니, 웬 여자애가 서 있었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눈이 커다란, 우리와는 뭔가 다른 아이였다. ▲ 그림=이우일 “안녕? 난 김나리야. 늬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니깐 미리 얘기할게. 우리 아빠는 필리핀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야. 물론 나도 한국 사람이고. 얼굴만 이렇지, 국어도 잘하고 김치도 잘 먹으니깐 잘 지내보자.” 우리 4학년 노을반은 모두 이름표에 별명을 쓴다. 내 별명은 ‘나무늘보’다. 만날 잠만 잔다고 아이들이 붙인 것이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리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왜 그런 걸 말해서 스스로 놀림감이 된 건지. 어쨌든 깜나리든, 흰나리든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건 커피색이야. 아빠 얼굴은 맥심 색이고 엄마 얼굴은 프리마 색이니까 당연히 난 커피색이지.” 저 애는 자기 얼굴이 창피하지도 않은가 보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나리였다. 깜나리의 집은 우리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아, 앞으로 좀 귀찮아질 것 같다. 나는 더 일찍 일어나 먼저 가버리거나, 늦잠을 핑계로 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하굣길은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 아이는 혼자서 신나게 떠들고, 나는 먼산을 보며 머리를 긁곤 했다. “아빠는 필리핀 사람이야” 당당하게 말하던 여자아이 나는 모처럼 참 조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먼저 학교에 갔다. 그 아이의 결석에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었고, 아이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이 뭔가 이상했다. 개울을 건너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개울을 건널 때 옆으로 슬쩍 보이던 그림자가 오늘은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왼쪽 귀를 내내 시끄럽게 했던 그 아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 깜나리의 집이 보인다. 한 번 찾아가 볼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괜히 낯설어서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집 앞에 섰다. 대문을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다. 슬며시 밀어보니 끼이익 열린다. 어두운 거실에는 풀지 않은 이삿짐 박스가 쌓여 있었고 바닥은 신문지나 라면 봉지 따위로 지저분했다. 나도 놀랐다. 그 아이의 까만 얼굴이 온통 젖어 있었던 것이다. 말없이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깜나리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혼자였는데 이 아이를 만나고부터 자연스럽게 ‘함께’라는 것에 적응하게 된 것 같다. 난 있지,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윽, 실수! 일단 위로라는 걸 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소리였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아이를 불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 나 깜나리다. 그치, 이 깜나리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안 되지.” 그러니 마음껏 울어.” 깜나리였다. 나는 가방을 들고 나갔다.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너 정말 혼자 있는 게 좋아? 아니지? 근데 왜 만날 폼을 잡니?” 난 있지, 예전부터 애들이랑 너무 친해지고 싶었는데 늘 나를 피하더라. 그래서 친구들 대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 모두들 잠잠한 듯 보였는데 나처럼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원래 마음 깊이 내려간 생각은 입으로 나오기 더 어려운 법이라서 조용했나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크레파스를 집어 얼굴을 그렸다. 갈색, 아니 커피색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친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는데 어느 새 깜나리가 와서 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빙긋이 웃으며 놓여 있던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폼을 잡고 앉은 깜나리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러니 내가 웃지 않을 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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