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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유희경

수로보니게 여인 2008. 1. 16. 00:12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 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 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당선소감
지금 손에 쥐어진 내 온도가 낯설다. 이것은 누구의 것일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일찍 죽거나 죽으려 하는 것일까.

 

드디어 앰프가 터졌다 이제 음악 없는 서커스다. 어릿광대의 춤을 보고 있는 누구도 웃지 않는다.

박수도 없다. 침묵이 두꺼워질수록 광대는 더 빨리 춤을 추고, 그의 두 뺨은 겁에 질린 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러나 광대는 뛰쳐나가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나갈 수 없다.

창 밖에서는 괴물이 숨 쉬고 있다.

 

단단한 비늘이 있고 타오르는 거센 숨에 둘러싸인 괴물이 두껍고 튼튼한 발이 달리기 시작한다.

보라. 괴물은 제 몸집의 크기를 보인 적이 없다.

독과 고함과 친구들에게, 이름의 한 글자씩 빌려주신 연 선생님과 성 선생님께, 권 선생님과 J형께, 아해와 부모님께,

그밖에 모든 사람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1980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년 재학중

심사평… 몰개성의 시대, 눈에 띄는 참신함 


예심을 거친 20명의 응모작들 가운데 이연후씨의 ‘우니코르’, 이서씨의 ‘고래자리’, 최수연씨의 ‘누에의 잠’, 유희경씨의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정도가 최종심 대상작으로 언급할 만하다고 여겨진 작품들이다.

▲ 시를 심사중인 황지우(왼쪽)·문정희씨.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보면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가 집약된 듯한 목록들을 읽을 수가 있다. 그 목록들이란, 최근 수년 동안 뭉쳐져 있는 경향이어서 어지간해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현저히 즉물적이다는 것, 다분히 자폐적이다는 것, 몰개성적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이 나쁘다, 좋다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이런 특징들을 가지되 응모작들이 스스로를 한편의 시로 ‘성립’시키고 있는가를 가려내는 것이 우리 심사자들이 할 일이었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갖는 조건, 즉 ‘시의 기본’을 모른 채 시 비슷하게 써서 시라고 우기는 것 같은 수많은 위조품들을 읽어야 하는 심사자의 고역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물적이다는 것은 사물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는 것, 동어반복하는 것은 시에서는 범죄일 수 있다. 또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넌센스의 나열이나 실패한 은유들을 가지고 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많은 투고작들이 어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는데 이 개성의 표준화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위의 네편 최종심 대상작들도 이런 지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를 시로 성립시키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최수연씨, 유희경씨의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다가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최수연씨가 시를 다루는 데 더 유연해 보이는 점이 있지만 유희경씨가 상대적으로 더 참신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선자는 앞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자신의 시인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