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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기록(三代記錄)

수로보니게 여인 2008. 1. 31. 13:03

 

              

       삼대기록(三代記錄) 


        청주 한씨(韓氏)들 3명이 기록을 세울 것 같다. 한명숙, 한덕수 총리 그리고 한승수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동의를 받으면 청주 한씨들 3명이 연달아 총리가 는 기록을 세운다.

     이 3명의 한씨 총리는 물론 같은 집안도 아니고 파(派)도 모두 다르지만, 본관(本貫)은 같은 청주(淸州)이다.

     

        조선시대에 3대를 연달아서 고위벼슬에 오른 집안들을 살펴보면 몇 집안이 있다. 

     3대를 연달아서 정승을 배출한 집안이 대구서씨(大邱徐氏) 약봉(藥峯) 집안이다.

     보통은 '달성서씨'(達成徐氏)라고도 하지만, 약봉 후손들은 '대구서씨'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서종태(徐宗泰·1652~1710)와 그의 아들인 서명균(徐命均·1680~1745)이 영조 때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서명균의 아들인 서지수(徐志修·1714~1768)도 또한 영의정에 올랐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모두 재상을 지냈다고 해서 '3대상신'(三代相臣)이라고 불렀다.

     뿐만 아니라 서유신(徐有臣), 서영보(徐榮輔), 서기순(徐箕淳)이 또한 내리 3대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시대 고위벼슬 가운데 가장 존경받았던 벼슬은 대제학(大提學)이었다.

     정승 자리는 정치적인 고려도 일부 작용하였지만, 대제학은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학문적인 업적만으로

     평가받아 갈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연안이씨(延安李氏)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 집안에서도 3대 연달아 대제학이 배출되었다.


       월사 본인이 대제학을 지냈고, 월사의 아들인 이명한(李明漢·1595~1645), 그리고 이명한의 맏아들인

     이일상(李一相1612~1666)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광산김씨(光山金氏) 사계(沙溪) 집안 또한 유명하다.

     사계의 증손인 김만기(金萬基·1633~1687), 김만기의 동생으로서 '사씨남정기' '구운몽'의 저자인 서포(西浦) 김만

    중(金萬重·1637~1692), 김만기의 아들인 김진규(金鎭圭·1658~1716), 김진규의 아들인 김양택(金陽澤·1712~1777)

    4명이 연달아서 모두 대제학을 지냈다.

    보학자들이 '국반'(國班:전국구 양반)으로 꼽는 '연리광김'(延李光金) 집안이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이들 3대 대제학의 문명(文名)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들이 조선의 A급 명문가들이었다. 

                                                             

                                                                                2008.01.30 22:49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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