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국어 바루기

그게 아니라? 그렇기는 하지만!

수로보니게 여인 2021. 5. 19. 18:21

읽기 좋은 글, 듣기 좋은 말l 그게 아니라?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말머리를 돌리는 사람, 말허리 자르는 사람, 말꼬리 잡는 사람, 남의 말을 가로채는 사람이란다. 말[言]과 말[馬], 두 말의 소리와 뜻을 잘 쓴 언어유희인데, 소통력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그저 웃고 지나갈 일만은 아니다. 남의 말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을 가로채고 말꼬리를 잡아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협력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개인의 생활에서든, 사회 속 인간관계에서든 말이다.
 여기에다가 몇 가지 경우를 더해 보자. 남의 말문을 막는 사람, 남의 말에 올라타는 사람, 남이 한 말이 된다느니 안 된다느니 하는 사람 등이 있겠다. 이런 언어유희를 하는 우리도 말꼬리를 잡는 사람일까?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게 된다. 한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입은 옷보다도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라면 ‘겨우 말 한마디’라 하며 넘어갈 수는 없다.
 흔히 자신이 하는 말에는 잘 주목하지 않는다. 얼떨결에 나온 말, 습관적으로 하는 말은 스스로 자각하지 않으면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만약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음…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데?’ 하는 순간 어떤 말로 말 차례를 이어가고 있는가? 오늘은 녹음해서 듣는 기분으로, 자신의 말 습관을 무대 주인공으로 한번 올려보자.
 우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로 ‘근데’형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만’, ‘근데 말이야’, ‘그치만 말이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말은 일단 자신의 말 차례를 확보하면서 말할 의지를 보이는 적극적인 태도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런 중립적 자세는 듣는 사람 처지에서도 크게 무례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되새겨 보자. 지금 들려오는 말과 나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털어놓을 때, 우리 마음이 이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해 보는 것은 ‘그게 아니라’형이다. 이 유형에는 ‘아니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아니지’ 등 다양한 부정 표현이 있다. ‘나의 뜻이 너와 다름’을 강조할 때 더 많이 들리는 표현은 사실 이것이다.
 대화에 몰입하고 있는 화자가 반대를 표할 때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상대방이 객관적인 사실을 잘못 말할 때는 단호히 ‘아니’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말할 때마다 ‘아니’로 시작하는 말 습관이다. 습관이란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라서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는데, 심지어 말끝마다 거듭 부인하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마냥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청자가 반감 없이 그저 듣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형 가운데 조금 더 선을 넘는 말도 있다. ‘그걸 말이라고 해?’나 ‘그건 말이 안 되지.’와 같은 표현이다. 말은 누구의 것이 아니므로, 내 말은 말이 되고 남의 말은 안 될 수 없다. 설령 논리상 틀려 보이는 말이더라도 사람끼리 하는 대화에서 ‘말이 안 되는 말’이라고 판단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듣는 이가 잘못 이해한 일일 수도 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말이다. 얼핏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위험한 말로,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는 이 말을 ‘사후확증편향’이라 했다. 결과를 확인한 뒤 처음부터 그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하는 현상인데, 어이없는 결과 앞에서 ‘내 그럴 줄 알았다’라 하는 것은 사실 ‘몰랐던 사실을 아는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어쩌면 예측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인정하는 셈이다. 상대방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투명하게 부정하는 ‘그게 아니라’, ‘그게 말이 되니?’는 화자의 독선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내 말이, 내 말이’나 ‘내가 그럴 거라고 했어, 안 했어?’와 같은 말도 잘 쓰는 편이다.
 그러면 이러할 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우리가 주목할 세 번째 유형은 ‘그렇기도 하지만’형이다. 이 말은 우선 ‘그렇지’, ‘그건 그래’로 지금까지 상대방이 한 말을 수긍한다. 곧이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데’라는 말을 더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말끝마다 ‘아니’라고 부인하는 대화와, ‘그건 그런데’라고 하는 대화의 끝은 몇 차례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달라질 것이다. 화자의 뜻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까 봐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말하기란 웅변이 아니다. 말하기를 문제해결 과정으로 본다면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이고, 다른 하나는 ‘들을 말’이다. 말은 상대방을 전제한다. 그리고 애써 대화에 임하는 목적은 사회적 관계를 높이는 데 있다. 비록 나는 현재의 화자일지라도, 듣는 이는 언제나 ‘잠재적 화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아니, 그게 아니라’가 아니라, ‘그것도 될 수 있는데’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글: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