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 ı ĿØЦЁ УØЧ/´˝˚³οο ı Łονё 旅程

100년 전의 역사를 캐내다

수로보니게 여인 2018. 5. 9. 21:20



기쁜 일도 있었고,
마음 답답한 일도 있는 하루의 중간,
답답함을 털어내 보려고 며칠 전(4월 27일)복지관 선생님들과 다녀온 나들이 사진을 꺼내본다 *.*


내 평생에 조개를 처음 잡아본 기념비 적인 날이다 뻘을 밟아보기도 처음,

무엇이든 처음의 의미는 특별하고 마음은 설렌다 안 들어가려다 인솔하시는 선생님들 사기 돋운다고


다른 선생님들 얼마나 열심히 잡는지 한 자리에 앉아서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내 눈엔 조개가 보이지 않으니 왔다 갔다 하느라,

처음치고 이만하면 꽤 괜찮은 성과가 아닌가ㅎㅎㅎㅎ



복지관 인연으로 만난 박정희 선생님. 그 때를 아십니까? 의 주인공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이 좋아 꽤 가까워졌다.

모임에서 안 보이면 서로 궁금해 하다 결국 번호를 꾹꾹 눌러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다



러브ㅎㅎ하하

조개를 잡고 다음코스는 광명의 가학산 폐광, 온통 산이 돌이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우리 조선인들을 데려다 돌을 캐내며 금을 줍던 곳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 샤방샤방~, 얼마나 설명을 맛깔나게 하는지 나도 '문화관광해설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간 했다.

곧 생각을 접었지만><


우리의 광부들이 생명을 걸고 오르내리던 곳

그네들의 삶이 고단함을 넘어 저 절벽 위를 나부꼈을 생명의 피폐함이 현실처럼 영상 되는 곳이다 넘사벽



가학산 암반수를 먹고 살아가는 희귀종 어류, 일급수를 먹고 살아서인지 뼈가 다 보이는 투명한 몸으로 유영한다.

나보다 더 좋은 물을 먹고 사는 이름하여 '글라스 캣피쉬'


징용과 자원 수탈의 현장. 이 아픈 역사가 다시는 이 땅에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 다시는.


그리고 6. 25 발발. 갈 곳 잃은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준 동굴. 아프다.

이 민족의 슬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역사의 현장


피난 중에도 생명의 꽃은 피어나고 .

~ 생명의 숭고함이여


고운 이름조차 사치로 여겨서였을까 이름을 '굴댕이'라 불렀다고 한다.

굴 어디선가 청아한, 아니 구슬픈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방울은 어느덧 산모의 이불을 적시고



야윈 몸으로 채광을 하는 광부를 다그치는 저 거시기를  그냥 .

지금 옆에 있다면 흠씬 패주고 싶다악마


광부들의 생명을 지켜주던 생명수는 지금도 유유하건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차마 그 물 한 모금을 입에 넣을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민족의 아픔과 함께 해 온 광산은, , , , 아연 등으로 산업화를 일구던 중,

1972년 발생한 홍수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아픈 역사를 간직하기라도 해서였을까 새우젓 저장고로 활용 되었단다.

새우젓이 변하지 않듯, 우리의 아픔도 잊혀져 변절되지 않아야 하리-0-


그렇게 20여 년을 방치되었다가 새우젓 저장소를 거쳐, 지금은 전국의 와인을 숙성시키는 숙성고로 변모했다고 한다.


팔도의 와인 숙성통이 다 모여 있다.

관광객들에게 현장에서 판매도 하는 팔도의 와인, 시음은 해봤지만 와인 맛을 모르는 나는하하



나의 복지관 친구 박정희 선생님을 모델로 하여 인증 샷만 한 컷

근데 어이 친구 벌써 취한 것이여?

각종 문화 행사에 '와인 페스티벌’까지

폐광을 관광지로 만들어 국민에게 잊혀져가는 히스토리를 기억하게 하고,

국가존립의 필요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해서 폰 속에 묻혀버릴 뻔했던 100년 전 역사를 다시 캐냈다.

 하루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할 즈음 시작한 가학산 폐광의 역사 캐기는 밤 1030분에서야 만세를 부르며 끝을 맺었다



덕분에 내 안의 답답했던 마음도 모두 캐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ㅎㅎ


이상,

1912년부터 가학산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다람쥐가 들려준 샤방샤방 옛날 이야기였습니다




1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