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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고 돌아오자 충무로는 물론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자칫 사장 될 뻔했던 ‘달마…’는 그렇게 떴다.
상업적으로는 다른 대중적인 영화에 비해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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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포지셔닝 전략과 마케팅 기법은 멋지게 적중했고, 분명히 영화가 대박이 났어야 했는데…. 결국 그 영화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전례처럼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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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중소기업 홍보 마케팅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마케팅은 정말 어렵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친구는 아직도 충무로를 떠나지 않고 고군분투 중이다.
생애의 절반을 영화에 바쳐온 그의 삶은 잃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나면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않는 그를 생각하면 미소달마가 바로 그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내 친구가 충무로에 간 까닭과 같다.
비록 자신의 삶은 남루하지만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하는 그 친구의 얼굴이 남령 선생의 미소 달마 그림과 겹쳐 보인 까닭이다. - 박상봉"(네이버에서 발췌)
취미와 예술 과제물로 그나마 제일 수월한 걸 찾은 것이 <취미로서의 영화>에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한 편 보고 그 차이점과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영화를 찾아보아야 할지 생각하는 갈피 속에 동영상을 찾기로 하고 네모상자 안에다 ‘독립영화’를 쳐 넣었더니…….
그러다 운 좋게 2시간 24분짜리를 찾아 상영했다.
……
오래전
기억도 아스라한,
저쪽 동네 남의 일 같이 느껴지는 기억의 한 쪽 자락이 펄럭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언어의 유희를 꽤나 자주 읊어대며 유쾌해 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이 과제에 대한 의미를 바짝 더하게 했다.
……
'그곳에서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롭지가 못해서’라며 산사를 찾은 기봉이 혜민 동자승에게 하던 말이다.
엄마……
‘아니요, 기억이 안나요.
난 기억을 못 하는데 어떻게 슬퍼요.’라는 말로 ‘엄마 보고 싶지?’라는 기봉의 물음에 답을 하는 동자승!
과제를 하기 위해 메모를 하던 것이,
대사마다 가슴을 파고들어 백을 해가며 남긴 한 바닥 된 메모를 가지고 그나마 수월하게 과제를 마쳤다.
그 여운이 울울해서 여러 가지를 클릭클릭, 겨우 그 동영상을 찾아 지금 또 상영 중이다.
과연 예술영화라 하기에, 또한 영화계에 기념비적 영화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란 만유를 다 포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운명에 반항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사랑하긴 어렵습니다.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세계는 결코 불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사고와 지식, 우리의 의식이 불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생의 소용돌이치는 사바세계의 한 가운데로 돌아갑니다.”
“견성성불은 한갖 꿈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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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결국,
자신의 시원이었던 곳 동쪽을 향해 간 것이다.
이제 비로소 ‘견성성불’을 이룬 것이다.
“이 몸은 흙과 물과 바람으로 허공중에 흩어지는데 나의 주인공은 끝내 어디를 가는고”
"스님 어디로 가세요"
불교 영화 속의 삽입곡은 찬송,
이 또한 제작자의 의도성 있는 구성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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