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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천상병

수로보니게 여인 2016. 7. 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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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천- 김원중노래

 

책벌레

 

 

“상병아, 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니?”

“누나는 그것도 몰라요? 그건 별마다 다른데 우리 태양은 2000억 년 정도 살아요. 앞으로 100억년 정도는 지금처럼 뜨거울 거예요. 다 타려면 아직 멀었으니 걱정마세요.”

“별은 참 오래 사는구나. 그런데 별 나이를 어떻게 알 수 있어?”

“나도 책 열심히 읽어서 안 건데, 그냥 알려주기 싫어요.”

“좀 가르쳐주라. 누나가 맛있는거 사 줄게.”

“정말이죠? 별은 색깔로 나이를 알 수 있어요. 푸르스름한 별은 어린 별이고, 노란 별은 어른 별, 붉은 별은 늙은 별이에요.”

“그럼 태양은 몇 살이야?”

“태양은 어른 별이에요. 한 50억 살쯤 됐어요.”

 

 

스승

 

 

집으로 돌아온 상병은 품에 넣고 온 시집을 꺼냈다. 표지를 펼치자 단정한 필체로 쓰인 짧은 글귀가 있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네가 그것에 닿아야만

네 것이 될 수 있다.

 

                                           - 김 춘 수

 

 

 

 

고등학생 시인

 

 

“만약 네가 한 여학생을 좋아하게 된다면 직접 찾아가 고백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꽃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을까?”

“저라면 꽃으로 제 마음을 전할 겁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제 마음을 더 잘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 제가 쓴 시가 어떻습니까?”

“상병아, 네가 쓴 것은 시가 아니다. 시는 꾸며서 쓰는 것이 아니다. 네 마음이 넘칠 때 그 넘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오면 그것이 시다. 넌 네 속에 없는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

상병은 선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가 무슨 강물도 아닌데 어떻게 마음 밖으로 흘러넘친단 말인가. ..

 

나이는 이미 스무살이었지만 상병은 아직 중학생이었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장례식을 보며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때로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느꼈다. 상병은 문득 가슴속에 흘러넘치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왜 하필 내가 오늘 이곳에 앉았으며, 왜 하필 내 앞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땅에 묻히고 있단 말인가. 그날 집으로 돌아온 상병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낮에 보았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상병은 벌떡 일어나 공책을 꺼냈다. 그리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옮겨적기 시작했다.

 

강물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상병은 이 시를 김춘수 선생에게 가져갔다.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상병의 시를 읽던 선생이 웃음 띤 얼굴로 상병을 바라보았다.

좋은 시를 썼구나. 감성의 뿌리가 살아 있다.”

 

..그렇게 상병의 시 ‘강물’이 문학잡지인 <문예>에 실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상병은 중학생 신분으로 어엿한 문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훗날 이 일은 상병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짝사랑

 

사람에 대한 속앓이는 오히려 시를 쓰는 촉진제가 되었다.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며 쓴 시 중에서 <갈매기>라는 작품을 모윤숙이란 시인이 추천하여 <문예>지에 실렸다. 이 추천으로 상병은 정식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다.

 

갈매기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저,, 공부하여 미국으로 떠나요.”

“언제 돌아와?”

“글쎄요. 지금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선배님 술 좀 줄이세요.”

“그래? 그래... 알았어. 잘 다녀와.”

 

인호에 대한 상병의 사랑은 고백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새장에 갇힌 새

 

그렇게 검은 지프차에 실려간지 여섯 달만에 상병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상병의 몸은 전기고문과 잠을 재우지 않는 취조로 이미 망가져 있었다. 상병은 전기고문을 세 번이나 당했다. 까무러치면 얼굴에 물을 뿌렸고 깨어나면 다시 고문을 계속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상병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리고 간혹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상병이 고문에 못 이겨 실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고통스런 기억을 지우기 위한 상병의 처절한 절규란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마 후 상병은 ‘새’라는 부제가 달린 <그날은> 이란 시를 발표했다.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상병은 결국 진실이 이긴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날은

-새

 

이제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제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병석에서 만난 천사

 

“상병이가 사람이 참 맑고 때가 끼지 않은 사람이야. 내가 보니 상병이를 좋아하는 눈치인데 시집을 가면 어떻겠어?”

“그런데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그게 걱정이에요.”

“네가 바느질을 잘하니 병풍에 수를 놓고 상병이는 시를 잘 쓰니 글을 써서 먹고 살면 되지.”

 

수락산하변 水落山下邊

 

하늘은 천국의 메시지

구름은 번역사

내일은 비다.

수락산은, 불쾌하게 돌아앉았다.

등산객은 일요일의 군중.

수목은 지상의 평화.

 

초가는 농가의 상징.

서울 중심가는 약 한 시간.

여기는 그저 태평천하다.

 

나는 낮잠 자기에 일심 一心이다.

꿈에서 메시지를 번역하고,

용이 한 마리, 나비가 된다.

 

 

막걸리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

 

또 한 번 죽음의 문턱을 건너다.

 

안정된 생활 덕분에 상병은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1984년엔 쓴 시를 모아 세 번째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를 펴냈다. 시집을 펴냈지만 생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친구들이 상병을 위해 작은 가게(까페)를 열어 주었다.

...1988년부터 상병의 배가 눈에 띄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간경화였다...

그렇게 도착한 춘천의료원 응급실에서 상병은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대학 친구인 정원석이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상병은 아픔도 잊고 소리쳤다.

 

“야, 너 원석이 아니냐. 야, 이 자식아! 이게 도대체 몇 년만이냐?”

“너 상병이 아니냐. 그런데 배가 이게 뭐냐? 아들이냐? 딸이냐?”

“내 마누라가 아기를 낳지 않으니 나라도 낳으려고 그런다. 우하하하.”

“하여간 여전하구나. 반갑다 이놈아. 근데 왜 다 죽어서야 나를 찾아온 거냐? 내가 무슨 저승사자냐? 우하하하.”

둘은 응급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병의 몸에 붉은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화상을 입은 듯 온몸에 물집이 생겼다. 정원석은 상병의 몸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몸 전체를 감았다. 순옥은 상병의 곁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 신랑이 5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 5년만, 딱 5년만....’

그렇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상병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온몸을 덮고 있던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상병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놈들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시무시한 빽을 가진 사람이야. 하느님이 내 빽이거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막걸리와 두부, 그리고 계란 한 판을 사들고 찾아간 서울과 의정부 경계에 위치한 천 시인의 집은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맞은 편, 서울 변두리 아파트 단지에도 편입되지 못한 난민, 아니 유민촌이랄 수 있는 그 집들은 키 작은 사람도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그런 토굴 같은 것이었다.

- 이 경철, <천상병 대표 시세계 산책> 중에서.

 

대학생 때 이미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린 상병에게 수락산 아래 난민촌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아름다운 낙원이었다. 이순 耳順이 되어서야 상병은 비로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게 되었다. 상병이 얻고자 한 것은 바로 가난이었다. 비로소 가난만이 주는 텅 빈 마음과 깨끗한 정신, 그리고 가난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얻은 것이다.

 

 

어느 날, 상병의 방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려고 이리저리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새 소리에 잠이 깬 상병은 문득 저 새가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토록 좁디좁은 세상으로 와서, 이리 저리 세상의 인심에 몸과 마음을 다치며 살아온 자신이 마치 길을 잃은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새는 자유를 얻지만, 방에 들어온 새는 자유를 잃고 갇혀버리지 않는가. 다시 자유를 찾으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날아다니는 작은 새 한 마리.

 

그러나 자유는 저 유리창을 건너야 얻을 수 있다. 투명하고 얇은 저 유리 한 장이 자유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상병은 저 새가 저 창을 지나 하늘로, 하늘로 날아 가기를 바랐다.

상병은 창문을 열었다.

 

창에서 새

 

어느 날 일요일이었는데

창에서 참새 한 마리

날아 들어왔다.

 

이런 부질없는 새가 어디 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일도 많다는데

참으로 희귀한 일이다.

 

한참 천장을 날다가 달아났는데

꼭 나와 같은 어리석은 새다.

사람이 사는 좁은 공간을 날다니.

 

 

이제 가진 것 없이도 즐겁고 행복하니 난 잘 살았다. 잘 살았다. 가진 것이 없으니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상병은 장모가 차려 놓은 밥을 먹다 말고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면 모두들 만나겠지.

만나면 말해야지. 아프지 않았노라, 원망하지 않았노라, 슬프지 않았노라고.

아름다웠노라, 아름답게 살다 왔노라고 말해야지. 행복한 기분에 상병은 스스르 눈을 감았다. 장모가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병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병원으로 달리는 응급차의 싸이렌 소리가 아득히 멀리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뜬 상병은 차장 밖 세상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는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이제 소풍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에요. 모두 잘 계세요, 잘 계세요.”

 

 인생은 어쩌면 잠깐 놀러온 소풍이 아닐까. 따스한 햇살에 몸을 적시며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 살다 죽는 일도 그런 소풍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 무엇을 원망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할 것인가. 짧다, 너무 짧다. 용서하자, 다 용서하자. 우린 모두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아닌가.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발췌: 천상병,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간 시인

전남진 지음

도서출판 작은 씨앗

 

*그냥 들러본 시립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온 이 책. 천상병 시인도 훌륭하지만 천상병 시인의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글로 풀어써주신 전남진 이란 작가가 존경스럽습니다

 

[출처] 천상병,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간 시인|작성자 ses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