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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박철

수로보니게 여인 2013. 5. 20. 21:52

 

입력 : 2013.05.20 03:02

[박철 10번째 시집 '작은 산']

절제하고 세련한 60편의 시… 세대·취향 없이 쉬운 시구절
식당 보조·다리 저는 아저씨… 건강하고 웃음 넘치는 그들에 오히려 나는 고단함을 잊는다

 



혼자 먹는 밥 같지만 사실
밥상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우리 다 같이 먹는 거다
밥집 하나가 넓은 쟁반 하나만 하지 않니

혼자 자는 것 같지만
우린 다 한 이불 덮고 자는 거야
손발이 이리저리 불거져 나와 그렇지
자다 보면 굴러가기도 하는 거지

그러며 혼자 계신 어머니는
혼자 사는 늙은 아들을 보내며
조용히 문고리를 풀어놓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 혼자일 수도 없고, 혼자여서도 안 된다. 자명하지만, 자주 잊는 그 깨달음을 시인 박철이 노래한다. 문학의 문외한에게도 친절한 시편이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절창들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5월의 연둣빛 가득한 표지를 열고, 시인 박철(53)의 10번째 시집 '작은 산'(실천문학사)을 읽는다. 첫 시 '사랑'부터 발이 걸려 넘어진다. '나 죽도록/ 너를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5행에 불과한 짧은 시지만, 항거불능. 사랑도, 공부도, 신념도, 열정도 우리 모두 딱 '고만큼' 부족했을지 모른다. 전통적인 서정으로 절제하고 세련(洗練)한 60편의 시편. 지난 1년간 출간된 시집 중 최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대와 취향을 따지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라면 주저 없이 첫손 꼽겠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에 살고 있는 시인과 만났다. 가난을 자청(自請)한 그는, 어림 반푼어치의 엄살조차 없는 거리의 시인.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의 화정공원이 전업시인의 작업실이고, 동네 문구점이 그의 출력실이다. 화정 공원의 보리수 옆 벤치가 그의 지정석. 시 쓰는 후배는 그 옆에 팻말을 하나 박자고 했다. '박철 시인 집필 중'.

'거리에서 쓴 시'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아귀찜 파는 여인, 다리 저는 금택씨, 손톱 빨간 천방지축 딸을 둔 식당 보조 아줌마가 그의 시를 짓는다. 자청하지 않은 가난에 원하지 않는 불우(不遇)였겠지만, 건강하고 웃음 넘치며 생활력 강한 그들에게 오히려 시인이 위로받는다.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버리긴 아깝고' 전문).

김수영은 그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철은 3년 전 백석문학상을 받으며 '시는 머리도, 심장도, 온몸도 아닌, 온 가족이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역할 제대로 못 하는 가장의 죄책감으로 "아빠가 시인이어서 미안해"라고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면, 대학교 2학년과 고3 딸은 "아빠 시가 최고"라는 답을 보내온다고 했다. '최고'라는 최상급이 단순히 가족 내의 자부(自負)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시집은 겸손하지만 선명한 시편들로 보여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이번 시집 '작은 산'을 관통하는 주제다. '나에게 이별의 참맛을 알게 하고 떠난 이가'로 시작하는 표제 시뿐만 아니라, '망원동 옛집' '밖' 등 여러 작품에서, 독자들은 '겸손한 작은 산'을 오른다.

새벽 4시.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할 때, 시인은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서 불빛 하나를 본다. '건너 아파트에 불빛이 하나 남아 있다/ 하늘도 잠시 쉬는 시간,/ 외눈처럼 박힌 저 불면이/ 헛된 기다림이 아니라/ 충만한 노동의 끄트머리였으면 좋겠다/ 예서 제로 마음의 빨랫줄 늘이니/ 누구든 날아와 쉬었다 가라'.

작고 보잘것없지만 우리 모두는 귀한 존재들. 당신의 고독과 고단함도 시인에게서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