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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생각(물건)

수로보니게 여인 2013. 4. 19. 11:09

- 쉰여덟 번째 이야기
2013년 4월 18일 (목)

물건을 대하는 자세

십 년 묵은 이불에 새 솜을 넣어서
다시 그 따스한 온기로 추위 막으려 하네
긴긴 밤 누워 머리 파묻고 잠들기 좋으니
창 너머 숲을 뒤덮은 눈이야 누가 상관하리

添得新綿十載衾
更敎溫煖辟寒侵
夜長卧穩蒙頭睡
牕外誰知雪滿林

- 구치용(具致用, 1590~1666)
「낡은 이불에 솜을 넣다[弊衾加絮]」
『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


  오래되어 낡고 닳은 이불이 있다. 십 년이나 되었다. 누가 한 이불을 십 년이나 덮는단 말인가? 그런데 십 년이나 덮은 이불을 뜯어 속에 든 솜만 갈아 넣는단다. 오래된 솜은 뭉쳐서 보온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이제 솜 갈고 바느질해서 이불을 다시 손질했으니 눈 덮인 밤 덮고 누우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여 세상모르고 잠들 것이다.

  길 떠날 제 어머니가 촘촘히 꿰매시고                慈母臨行密密縫
  추위에 떨까 넣어주신 솜은 두툼하기도 해라       念寒猶着絮重重
  손수 기우신 솔기들 이제는 다 터졌는데             手中新線今皆綻
  언제쯤 색동옷 입고 춤추며 기쁘게 해드릴는지    戲舞何時綵服穠


  최연(崔演)의 「옷이 해어지다[衣敝]」라는 시이다. 어머니가 길 떠나는 아들을 위해 정성스레 옷을 지어주셨다. 아들이 무슨 일로 길을 떠나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는 이별의 슬픔과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우셨으리라. 정갈하게 바느질을 하고 객지에서 추위에 떨까 솜까지 겹겹이 넣어주셨다. 소중한 이 옷을 아들은 조심스레 입어왔을 터이다. 이 옷이 있어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솔기들이 다 터질 정도로 해어져 버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어머니를 떠나 있었던가? 어머니께 달려가 정겨운 이야기 나누며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십 년 동안 단벌옷 입고서                              十年單布着
  산수를 훨훨 나는 듯 돌아다녔네                     山水去翩翩
  강 안개에 젖어 바래기도 하고                        渝得江霞濕
  산 바위에 걸려 찢어지기도 하였지                  穿於峽角牽
  돌아가면 아내는 잔소리해댈 것이고                歸應閨婦詈
  저자에선 아이놈들 부러움 사지도 못하지만      出不市童憐
  오만하게 마음은 절로 꼿꼿해져서                   傲然心自大
  너덜너덜하다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네             一任喚鶉懸


  이윤영(李胤永)의 「해진 도포[弊袍]」라는 시이다. 십 년 동안 단벌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여기저기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녔으니 빛도 바래고 해질 수밖에. 생계를 돌보지 않으니 아내는 바가지를 긁고 행색이 초라하니 저잣거리에서는 아이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떨어진 솔기와 찢어진 옷자락에 서려 있는 가난은 바로 내 삶의 이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의 시선이 어떻든 마음은 태연할 뿐이다.

  이불은 솜을 갈았으니 십 년은 더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옷이니 자식이라면 차마 버리지 못할 것이다. 단벌옷을 십 년 동안 알뜰하게 입어 왔으니 닳아 없어지지 않는 이상 몸에 익은 옷을 버릴 것이 무어랴? 아무리 물건이 귀한 시대였다지만 해지고 닳아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어째서일까? 요사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LP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유행이란다. 디지털 시대에 LP판이라니. 어쩌면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포옹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 변구일(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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