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3>전통의 재구성
기사입력 2012-02-03 03:00:00 기사수정 2012-02-03 03:00:00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구식 집에 살고, 서구식 옷을 입으며 근 한 세기를 살아 온 우리에게 이제 전통이라는 것은 외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도, 철학도 모조리 서구의 것을 답습하고, 새로운 종교는 전통을 아예 미신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 그 한마디로 동양철학은 미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완전히 유리되었다. 적어도 우리의 전통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다름없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외국에서 건축가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안내를 맡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서구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전통건축들은 참으로 이상한가 보다. 기껏 힘들여서 그들에게 전통정원을 다 보여주고 나면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정원은 언제 보는가.” “정원은 어디 있는가.” 그들은 소쇄원에서조차 그런 질문을 했다.
그리고 조선의 반가들을 보여 주고 나면 그들의 반응은 다 똑같다. 좀 의아한 표정으로 양손을 마주대고 벌려서 거리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손짓을 취한다. 집들을 보며 좀 크고 작은 차이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똑같은 집들이 더 붙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 후 같은 한국인들끼리 갔을 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고 나는 전통건축을 설명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아울러 나는 우리 사회가 서구의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전통과 급격하게 단절된 우리가 기댈 언덕은 빠른 근대화를 통해 배운 서구식 모델이었다. 없는 전통에 기대봐야 넘어질 일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새것 콤플렉스는 유행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끌려온 상황이지만 한 사회가 외부의 힘에 이렇게 경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함성호의 옛집 읽기]<4>‘소리의 정원’ 소쇄원
기사입력 2012-02-06 03:00:00 기사수정 2012-02-06 03:00:00
문득 아침에 일어나 간절하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이 그곳이다. ‘소쇄’ 하고 입속에 넣으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소쇄소쇄소쇄, 이어서 발음하면 분명히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다. 깊고 맑을 소(瀟)자에 비바람 소리 쇄(灑)자다. 중국어로 발음하면 ‘샤오싸’로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소리가 더 확실하게 난다.
많은 사람이 소쇄원의 조경에 대해 탄복하지만 소쇄원의 백미는 소리를 듣는 것에 있다. 소쇄원은 듣는 정원이요, 소리의 정원이고, 소리를 위한 정원이다.
소쇄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뉜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공간인 화계와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 등이 내원에 속하고, 외원은 활을 쏘았던 후간장터, 입구의 대나무 숲 등이다.
소쇄원 입구에는 높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다. 원래 두 사람이 길을 가면 조금 넉넉한 정도의 길이었다. 기묘사화 후 낙향해 소쇄원을 지은 문인 양산보는 이 좁은 길 양편에 넓은 대나무 숲을 조성했다. 정원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먼저 이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색과 소리의 조화를 먼저 안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의 끝은 계류의 전모가 다 드러난 탁 트인 지형과 마주한다.
사실 내원의 지형은 탁 트였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작은 계곡에 불과하다. 이 협소한 계곡이 탁 트였다고 느끼게 하는 건 순전히 비좁은 대숲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강한 대비를 통해 심리적으로 내원에 개방감을 주었다. 동시에 우리는 거기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물소리는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옥타브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오곡문 담장 밑에서부터 바로 계곡을 흐르는 큰 물소리고, 다른 하나는 수로를 이리저리 돌리고 돌려서 대봉대를 거쳐 이어져 계곡에 떨어뜨리는 낮은 물소리이다.
이윽고 다리를 건너면 물소리와 대숲의 바람소리가 장엄하게 연주된다. 그러나 아직 소쇄원의 연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정원의 정점은 광풍각이다. 우리가 이 광풍각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대숲의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작은 수로의 낮은 물소리까지 장엄한 천지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풍각의 자리는 이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로열박스인 셈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많은 사람이 소쇄원의 조경에 대해 탄복하지만 소쇄원의 백미는 소리를 듣는 것에 있다. 소쇄원은 듣는 정원이요, 소리의 정원이고, 소리를 위한 정원이다.
소쇄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뉜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공간인 화계와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 등이 내원에 속하고, 외원은 활을 쏘았던 후간장터, 입구의 대나무 숲 등이다.
소쇄원 입구에는 높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다. 원래 두 사람이 길을 가면 조금 넉넉한 정도의 길이었다. 기묘사화 후 낙향해 소쇄원을 지은 문인 양산보는 이 좁은 길 양편에 넓은 대나무 숲을 조성했다. 정원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먼저 이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색과 소리의 조화를 먼저 안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의 끝은 계류의 전모가 다 드러난 탁 트인 지형과 마주한다.
사실 내원의 지형은 탁 트였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작은 계곡에 불과하다. 이 협소한 계곡이 탁 트였다고 느끼게 하는 건 순전히 비좁은 대숲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강한 대비를 통해 심리적으로 내원에 개방감을 주었다. 동시에 우리는 거기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물소리는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옥타브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오곡문 담장 밑에서부터 바로 계곡을 흐르는 큰 물소리고, 다른 하나는 수로를 이리저리 돌리고 돌려서 대봉대를 거쳐 이어져 계곡에 떨어뜨리는 낮은 물소리이다.
이윽고 다리를 건너면 물소리와 대숲의 바람소리가 장엄하게 연주된다. 그러나 아직 소쇄원의 연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정원의 정점은 광풍각이다. 우리가 이 광풍각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대숲의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작은 수로의 낮은 물소리까지 장엄한 천지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풍각의 자리는 이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로열박스인 셈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함성호의 옛집 읽기]<5>소쇄원 옆 식영정
기사입력 2012-02-07 03:00:00 기사수정 2012-02-07 03:00:00
◀담양군 제공
식영정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 옆에 있다. 소쇄원이 지어진 지 꼭 30년 후인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정자의 관리는 김성원의 후손도 아니고 임억령의 후손도 아닌, 성산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후손들이 맡고 있다. 그만큼 이 정자는 주인이 누군지가 의미 없을 정도로 성산 일대의 문인들이 이용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던 정자다.
식영정은 자미탄가에 높이 솟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식영정에 다가가려면 절벽 위로 난 길고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절벽 위에서 풍경을 아래로 굽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구불구불한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것도 식영정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식영정은 정자다. 정자는 살림집과 달리 노는 집이다. 그냥 노는 집이 아니라 자기의 공부를 자연 속에서 확인하고, 증명하며 노는 집이다. 그런데 정자는 영남의 정자와 호남의 정자로 구분된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호남의 정자는 주위의 풍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호방하게 서 있는 반면 영남의 정자는 살림집과 그리 멀지 않거나, 아예 살림집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그들의 학풍에 있다. 조선의 성리학은 이(理) 중심의 정주계 성리학이 압도적이다. 단지 기의 작용을 어느 정도 비중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나뉜다. 이렇게 볼 때 호남의 사림은 주기론자가 많고, 영남의 사림은 주리론자가 압도적이다. 당연히 밖으로 드러난 현상을 살피는 호남의 정자들은 앞이 탁 트인 곳에 자리하고, 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영남의 정자들은 한층 더 은밀한 곳에 자리한다.
식영정은 호남 정자의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식영정이란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임억령은 정자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김성원의 부탁을 받고 장자의 ‘제물편’에 있는 그림자의 예를 든다. 흡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같은 예를 통해 임억령은 인생이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신기루 같고, 그림자 같은 거라고 말하며 그림자(影)를 끊고(息) 존재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식영정이라고 지었다.
식영정에 오르면 거기서 보이는 모든 현상이 뜬구름 같은 것이고,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식영정은 자미탄가에 높이 솟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식영정에 다가가려면 절벽 위로 난 길고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절벽 위에서 풍경을 아래로 굽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구불구불한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것도 식영정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식영정은 정자다. 정자는 살림집과 달리 노는 집이다. 그냥 노는 집이 아니라 자기의 공부를 자연 속에서 확인하고, 증명하며 노는 집이다. 그런데 정자는 영남의 정자와 호남의 정자로 구분된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호남의 정자는 주위의 풍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호방하게 서 있는 반면 영남의 정자는 살림집과 그리 멀지 않거나, 아예 살림집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그들의 학풍에 있다. 조선의 성리학은 이(理) 중심의 정주계 성리학이 압도적이다. 단지 기의 작용을 어느 정도 비중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나뉜다. 이렇게 볼 때 호남의 사림은 주기론자가 많고, 영남의 사림은 주리론자가 압도적이다. 당연히 밖으로 드러난 현상을 살피는 호남의 정자들은 앞이 탁 트인 곳에 자리하고, 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영남의 정자들은 한층 더 은밀한 곳에 자리한다.
식영정은 호남 정자의 대표적인 예다. 그것은 식영정이란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임억령은 정자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 김성원의 부탁을 받고 장자의 ‘제물편’에 있는 그림자의 예를 든다. 흡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같은 예를 통해 임억령은 인생이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신기루 같고, 그림자 같은 거라고 말하며 그림자(影)를 끊고(息) 존재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식영정이라고 지었다.
식영정에 오르면 거기서 보이는 모든 현상이 뜬구름 같은 것이고,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