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조용헌 살롱

공양주(供養主)

수로보니게 여인 2009. 6. 16. 01:07

 

공양주(供養主)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기사 100자평(5)
입력 : 2009.06.14 22:50


나이 든 독신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점이 애로사항인가' 하고 물어보는데, 공통된 답변이 바로 '뜨신 밥 한 그릇'에 있었다. 남자 혼자 사니까 매일 아침, 뜨신 밥 해먹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그릇에 잘 담근 배추김치 한 접시, 그리고 뜨거운 된장국 한 사발이면 그걸로 족하다. 산에서 도 닦는다고 수십년 동안 독신생활을 고집하던 도사가 말년에 그 절개를 꺾고 어느 날 갑자기 절구통같이 못생긴 여자하고 같이 사는 이유도 알고 보면 김이 나는 밥 한 그릇이 그리워서 그렇게 된 경우가 많다.

뜨신 밥은 이처럼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절에 갈 때마다 공양주(供養主)가 어떤 사람인지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공양주는 절에서 밥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국 불교의 전통에서 보자면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공덕같이 큰 공덕이 없다. 도를 통하려고 해도 그동안 깔아 놓은 공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장(魔障)에 시달린다. 불가에서는 마장에 많이 시달리는 사람은 쌓아 놓은 공덕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진단한다.

어떤 스님은 자진해서 절간의 공양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공양주로서 12년간 도반들 밥을 퍼주다 보면 그 공덕으로 평생 탈 없이 도를 닦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만나본 공양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5년 전쯤에 어느 절에서 만났던 40대 후반의 남자 공양주였다. 그 절은 유명한 기도처로 소문이 나서, 주말이면 평균 1000명이 넘는 기도객이 몰려드는 사찰이었다. 이 많은 사람의 밥을 해주는 것도 큰 문제였다.

수백명의 밥을 동시에 하는 '밥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공양간에서 이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푸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의외로 먹물이 든 관상이었다. "어찌 이 심산유곡에서 남자가 밥을 하고 있는가" "사업에 부도가 나서 자살을 할까 하다가 아는 스님의 권유로 공양주를 하게 되었다. 매일 수백명분의 밥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삶의 궁지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지금은 몇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밥 퍼 주었던 공덕으로 재기했으리라 믿는다.

 

 

 

'´˝˚³οο조용헌 살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리이타(自利利他)   (0) 2009.07.13
등산 예찬  (0) 2009.06.22
작약(芍藥)을 보면서   (0) 2009.05.25
선농대제(先農大祭)   (0) 2009.04.22
좌(左)와 우(右)의 의미 2  (0) 2009.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