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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김사인

수로보니게 여인 2009. 3. 16. 18:01

김사인, 「달팽이」(낭송 김사인)2009년 3월 16일

 
 
 

김사인의 「달팽이」를 배달하며

조선시대의 시인 차천로가 ‘자라(鼇)’를 자신의 표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이 시에서 ‘달팽이’는 시인이 지향하는 정신의 속도와 폭을 잘 대변해주는 표상인 듯합니다.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천 년 쯤을 기약하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달팽이. 말도 걸음도 느린 시인의 나지막한 면모가 영락없이 달팽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그 달팽이의 천년행로가 다름 아닌 우리 귓속에 들어 있다는 것. 좁고 어두운 구멍 저편에서 근근히 들려오는 소리를 양식 삼아 나아가는 달팽이의 구도행에서는 쓸쓸한 장엄함이 느껴집니다. 그 길은 아마도 눈 밝고 발 빠른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소로(小路) 같은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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