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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梨花莊)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이화장(梨花莊)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머무르며 새롭게 들어선 대한민국의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했던 집이다. 엊그제 이승만 대통령의 며느리인 조혜자(66) 여사의 안내를 받아 이화장 곳곳을 둘러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품격이 있는 지세(地勢)를 간직한 터였다. 우선 집 뒤쪽으로는 바위 화강암 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암벽은 낙산(駱山)에서 내려온 지맥이 뭉쳐 있는 장소라는 증거였다. 건국내각 명단을 발표했던 '조각당(組閣堂)'은 마루 2평, 방 2평 반 정도의 아주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방 안에는 '방구명신'(邦舊命新:나라는 오래지만 사명은 새롭다)이라고 쓴 이 박사의 친필액자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각당 자리는 암벽에 올라타고 있어서 기운이 강한 지점이었다. 서향(西向)집인 이 터에서 앞을 보면 서울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오른쪽에서부터는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의 봉우리들이 산성(山城)처럼 힘차게 보이고, 다시 둥그런 모양의 인왕산이 있고, 그 옆으로는 연세대 뒷산이 삼각형 모습인 문필봉(文筆峰)으로 보였다. 집 뒤는 암벽이요, 가운데로는 바위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전망에는 서울의 명산들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호쾌하면서 기운이 강한 터는 뜻이 높은 문사(文士)가 거처할 만한 명당이다.
원래 이 터는 대제학을 지낸 신광한(申光漢:1484~1555)이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그는 생전에 낙봉(駱峰), 석선재(石仙齋), 청성동주(靑城洞主)라는 여러 개의 호(號)를 사용하였는데, 이 터를 보니까 왜 그런 호를 사용하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약 200년 뒤에 당대의 문사였던 표암 강세황(1712~1791)도 집 뒤의 바위암벽에 매료되어 '홍천취벽(紅泉翠壁)'이라고 새겨놓았다는데, 지금은 흙에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이화장은 대한민국의 산실이라는 역사적인 비중에 걸맞게 좀 더 단장되어야 할 것 같다. 우선 품위 없는 현재의 철제대문을 철거하고, 전통한옥의 솟을대문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일부에 금이 간 벽돌 담벼락도 한옥 담으로 교체해야 한다. 유물전시관도 새로 지어야 한다. 제습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유물이 썩고 있는 중이다. 올해가 '건국 60주년' 아닌가!
2008.08.06 23:00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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