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 버드'와 대적(大寂)
사찰에 가보면 현판에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있다. 대적(大寂)이 바로 '위대한 고요'(Great quiet)라는 뜻이다. 고요함의 극치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빛(光)이 나온다. 빛이 안 나오려고 해도 저절로 나온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적광'의 뜻이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문제는 얼마나 고요함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가이다. 이것이 어렵다.
대정(大定) 가운데는 '나가대정(那伽大定)'이 유명하다. 여기서 나가(那伽)는 산스크리트어의 나가(Nagar)에서 온 것이고, 나가(Nagar)는 큰 뱀 내지는 용을 가리킨다. 큰 뱀의 주특기는 똬리를 틀고 고요히 앉아 있는 능력이다. 고요히 앉아 있으니까 큰 지혜가 생긴다고 본다. 뱀이 똬리를 틀고 수백 년 있으면 용이 된다. 대승불교권에서 가장 심오한 경론(經論)이 용수(龍樹)가 쓴 '중론(中論)'이다. '중론'을 이해하면 불교사상 전체를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중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론'의 핵심은 팔불중도(八不中道)이다. '생(生)도 아니고 멸(滅)도 아니고, 단(斷)도 아니고 상(常)도 아니고, 일(一)도 아니고 이(異)도 아니고, 거(去)도 아니고 래(來)도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용수의 이 사상이 결국 신라의 원효(元曉)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원효가 내놓은 화쟁사상(和諍思想)도 '중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용수의 이름이 나가르주나(Nagarjuna)이다. 이름에 나가(Nagar)가 들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용수의 '중론'도 '나가대정'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대정(大定)과 대적(大寂)이 없으면 큰 지혜는 나오기 어렵다. 지혜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자기의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가'처럼 고요히 앉아 있을 줄 알아야 한다. 부지런한 '얼리 버드(early bird)'는 아파트 공사 납기를 줄이는 데나, 비즈니스맨이 여기저기 거래처를 만나러 다닐 때는 필요하다. 그러나 일국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화쟁력(和諍力)과 통찰력은 '얼리 버드'에서 나올 수 없다. 대통령의 '대적'(大寂)을 보고 싶다.
2008.06.04 22:18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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