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게 된 계기랄까, 그런 것은 글쎄요"라고 입을 연 김영하씨는 "그냥 지난해 조선일보 연재를 마치고 《퀴즈쇼》를 출간하면서 그동안 너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출국의 변을 밝혔습니다. 2004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검은 꽃》과 2007년 만해문학상 수상작 《빛의 제국》에 이어 《퀴즈쇼》에 이르기까지 장편만 내리 3권을 냈으니 피로감을 느낄 만도 하지요.
"이러다 엔진이 너무 과열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작가가 처음 됐을 때의 초심이랄까,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됐는데요. 돌이켜보니 그때가 작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게 아닌가 싶더군요. 처음 소설을 쓰던 때의 그 마음, 집중에서 오는 기쁨, 뭐 그런 것들을 찾아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김씨는 현재 미국에 있습니다. 뉴욕에서 열리는 국제 펜클럽 축제에 초대 받았고, 보스턴에 들러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지난주 출국했습니다. 그는 이달 중 다시 서울에 돌아와 짐을 챙긴 뒤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가서 약 2달 정도 머뭅니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행 산문을 쓰고, 유럽 다른 나라도 기웃거린답니다. "아내에게 '조금 적게 벌더라도 씀씀이를 줄여 마음 편히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살겠다'고 말하자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저희는 애도 없기 때문에 사실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할 필요도 다른 부부에 비해 훨씬 적기도 합니다."
김씨는 8월에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으로 날아갑니다. 한국문학 번역과 연구가 활발한 대학입니다. 김씨는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집필실을 얻어 새 소설을 쓴답니다. "한 4년 전부터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소설인데 가능하면 밴쿠버에서 초고를 끝낼 생각입니다. 일단은 1년 체류할 계획이지만, 집필에 시간이 더 필요하면 1년 정도 더 연장할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머물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도 여행할 생각입니다. 그 기간 중 만약 저를 한국에서 해외작가처럼 초청해준다면 잠깐 올 수도 있겠지요, 하하. "
출국 성명은 없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냥 작품 쓰러 가는 것이니, 제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 써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그는 씩씩하게 소년처럼 말했습니다. 2008.05.04 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