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政治)와 이종격투기
'동물의 왕국'이 왜 심오한 프로인가?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을 어떤 분식(粉飾)이나 치장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분식이나 치장으로 가려져 있어서 흐릿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계의 약육강식 상황이, 동물의 왕국을 볼 때마다 그 본질이 명료하게 드러나곤 한다. 인간계의 약육강식을 스포츠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종목이 바로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다. 권투나 축구보다도 요즘 더 인기가 있다.
모든 격투는 본질을 드러내 준다. 권투와 씨름, 레슬링과 가라테와 같이, 이종(異種)의 강자끼리 붙을 때 훨씬 흥미롭다. 마치 사자와 호랑이가 붙을 때 재미있는 것과 같다. 만약 아프리카의 사자와 북극의 백곰이 만나서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사자 대 사자, 곰 대 곰의 대결은 단순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유전자와 성장과정을 거친 동물끼리 만나면 훨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종끼리의 대결에서는 그동안 사용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었던 소질과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이종대결은 관객들에게 삶이 지닌 총체적 버라이어티를 제공한다.
이종격투기 다음으로 인간 삶의 '격투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종목(?)이 바로 정치(政治)인 것 같다. 이종격투기는 사각의 링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그리고 3라운드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게임이 진행되지만, 정치는 무대범위가 훨씬 넓고, 시간도 거의 무한대라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정치라는 무대의 등장인물은 참으로 다양하다.
재벌 2세로 태어난 기업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외국 가서 박사 딴 수재, 감옥까지 갔다 온 민주투사, TV화면에서 인기를 얻은 앵커맨 등등 온갖 분야에서 리그전을 거쳐 올라온 강자들이 마지막 회전(會戰)을 벌이는 곳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격투무대는 은평을의 이재오와 문국현, 동작을의 정동영과 정몽준, 종로의 손학규와 박진, 도봉갑의 김근태와 신지호로 압축되고 있다. 4군데의 빅 매치 가운데서도 특히 '이종격투'(異種激鬪)의 본질을 보여줄 매치는 이재오와 문국현이 아닌가 싶다. '동물의 왕국'보다 훨씬 깊이 있게 삶의 본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 2008.03.17 22:50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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