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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과 학인당
창덕궁 내에 있는 연경당(演慶堂)은 그 이름이 특이하다. 왜 이름에 '연'(演)자가 들어가는 것인가.
경사스러운 행사를 연행(演行) 한다는 의미에서 '연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최근 전문가들의 연구논문('純祖代(순조대) 연경당의 복원연구')에 의하면, 이 연경당은 왕실의 로열패밀리들이 춤과
노래를 관람하던 공연장(公演場)이었다는 것이다. 원래의 'ㄷ'자형 건물구조도 공연 관람의 편이를 위하여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고, 남쪽에는 조립식 담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대규모 공연 때에는 임시로 철거가 가능했다고 한다.
연경당은 아들인 효명세자가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도정치에 시달리는 아버지 순조를 즐겁게 하기
위한 효도의 차원에서 1827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전통한옥 가운데 집안에 공연시설을 갖추었던 곳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100칸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저택이었던 강릉 선교장(船橋莊)에도 별도의 공연관람 시설은 없었다.
안동의 규모가 큰 수십 군데의 종택(宗宅)들을 둘러보아도 무대장치가 있는 집이 없다. 이 점이 매우 아쉽다.
유교는 소박함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집안에다가 공연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매우 사치스럽게 여겼던 듯하다.
하지만 때로는 '사치'에서 문화가 발전하는 법이다.
전주 교동의 한옥마을에 있는 학인당(學忍堂)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눈여겨볼 만한 집이다. 1908년에 건축된 학인당
은 대지 2000평에다가, 건축비로만 당시 쌀 8000가마 값이 들어간 호화저택이었다. 이 집은 본채의 구조가 판소리 공
연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천장도 높은 편이다. 7개의 들보를 사용한 '칠량(七樑)집'이라서, 거의 2층 높이에 가깝
게 지었다. 본채 가운데에는 공연이 이루어졌던 가로 세로 6m 크기(4칸)의 대청마루가 있다. 마루 좌우에는 방이 있고,
공연 시에는 이 방의 문을 들어올릴 수 있다. 좌측방의 크기가 4칸이고, 우측방은 2칸이다. 여기서 다시 앞뒤로 설치된
유리문을 철거할 수 있고, 유리문을 철거하면 앞뒤로 각각 1칸 크기의 툇마루 공간까지 확보된다.
약 100여명이 판소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는 셈이다.
판소리 전성기에 각광 받던 공연장이 전주 학인당이었다.
A life of luxury and civilized life
civilized citizensa cultured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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