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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기쁨의교회 전교인 여름수련회

수로보니게 여인 2017. 8. 13. 02:01

2017년도 기쁨의교회 전교인 여름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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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


할렐루야~,

바라고 소원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완성시켜주신다고 말씀으로 약속해주시고, 보이는 땅의 것들을 따라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7년에도 어김없이 수련회를 통하여 이러한 믿음의 행보를 굳건히 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시기 원하셔서, 말씀 안에 거울로 보여주신 믿음의 선진들이 자기 시대를 어떠한 믿음으로 돌파했는지, 시간마다, 머리에, 눈에, 마음에, 아니 손에 잡게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저의 삶을 통하여도 믿음의 증거가 넘치도록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소감으로 영광 돌려드리기 원합니다.



수련회 전 준비 기도 가운데 '자기 시대를 돌파한 사람들'이란 주제 말씀이 주어졌을 때, 언제나 그렇듯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초 '그 땅을 그려오라'는 2017년 교회 주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 하심이라 믿으며 시작한 일, '한국어교원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시작한 일을 숨이 턱에 닿도록 일상과 수강을 병행하며 마치기는 했지만, 8월 실습과 9월 본 고시를 앞두고, '괜한 시간 낭비를 한 건 아닐까?, 하나님께서 제 앞에 두신 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부리는 객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마다 고개를 쳐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아니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맞을 거야'라며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확증 받으려 기도하던 때에, 수련회 주제 말씀 '자기 시대를 돌파한 사람들'은, 나의 시대, 이제 어떠한 비전을 품을 때는 다 지나 가버렸다고 속삭이는 사탄의 부정적 생각을 털어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떠한 환경적 조건이나 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또 이유 없이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이 환경을 돌파할 뿐 아니라 끝내는 시대를 돌파하도록 이끄시고, 그 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이심을 믿는 마음에 인증을 더하여 주실 거라는 마음으로 수련회 첫날 첫 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막 10장에 나타난 바디매오가 어떻게 눈을 떠는지에 대한 김용식 간사님의 '보기를 원하나이다.'의 말씀에서 그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는, 즉 인격이나 비전 따윈 애당초 없는, 그래서 정체성 같은 건 갖을래야 갖을 수 없는 이름 없는 거지에 불과한 자였으나, 치명적 약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려는. 위대한 인생으로 바꾸어 쓰시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임을 말씀하실 때, 지금 나의 약점에 대해 돌아보게 하셨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바디매오가 하나님 앞에 나갔던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믿음을 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제 여리고를 떠나려는 예수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고, 아브라함에게도 다윗에게도 있었던 치명적 약점은 결국 그들을 하나님나라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고, 맹인이며 거지인 바디매오도 치유 불가능한 약점을 예수님에 대해 들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듣고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잠잠하라는 무리들의 꾸짖음처럼 육신의 생각은 목이 잠기도록 부르짖는 기도를 방해하며 잠잠하기를 속삭였지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이 이 자리에 오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붙잡고 목이 터져라 저의 한계, 즉 하나님의 비전에 치명적 약점인 나이, 시간 없음 등의 한계를 돌파하고, 과연 내가 그리는 헤브론(한국어교원)이 나에게 주신 땅이기는 하기는 한 걸까? 하는 부정적 생각을 돌파하기 위한 기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수련회를 통하여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19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많은 사람들의 꾸짖음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부르짖는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에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신 예수님께서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한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제게도 들려지기를 사모하며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히 11:6~7


저녁 말씀  본문입니다.

믿음의 기초를 말씀하시며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창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노아의 삶으로 보여주십니다.

"신앙은 믿음이 전부이고 모두이다. 시작이고 끝이다. 믿음으로 한 것만 받으시고 그것만 하늘에 상급으로  남는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이다. 선진들이 이로써(믿음)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를 돌아봅니다.

제가 하는 신앙은 믿음을 기초로 하는가? 믿음으로 예배를, 믿음으로 기도를, 믿음으로 찬양을, 믿음으로 가족을, 믿음으로 셀 리더를,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문화, 조류, 풍습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영을 따르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결과로 주어진, 즉, 넓은 길로 가는 자의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불순종하고 거스르는 모습을 이에 빗대어 말씀하실 때, 혹여라도 제 안에 불순종의 영이 자리 잡지 않도록 날마다 겸손의 영으로 채워주시기를 구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노아의 삶을 거울로 보여주시며 "노아를 배우지 말고 그의 믿음이 내것이 되게 하라"는 말씀을 골수에 심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며 육신을 즐기고 있을 때, 노아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 전혀 홍수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을 붙들고 배만 지었다고 하십니다. 자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놀 뿐만 아니라 그를 조롱하고 배척도 했을 것이라 하십니다. 그럼에도 그는 남들 따라 살지 않고 '왜 자신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불평도 하지 않고 오직 배만 지었다고 하십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라는 말씀을 붙잡고 오직 배만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것임을 믿었기에, 그것 즉, 방주 짓는 삶에 목적을 두고 살았다고 하십니다. 방주 짓는 삶이 자기 삶의 목적인 삶은 미완성의 배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해주십니다.

애써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삶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살다 보니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제 삶이 문화나 유행에 둔감한 것이 믿음에 기인된 것인지 그냥 타고난 기질적 성향인지를 생각하며, 성향이라면 다시 말씀에 따르는 삶의 모습이 그와 같기를 소원해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전이라 여기며 그리는 저의 땅 헤브론, '한국어교원자격취득'은 저의 정욕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보며 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를 기도합니다.

'육에 속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것)이 좋아 보이게 된다.' 하셨는데, 혹 육신의 정욕을 쫓는 일은 아닌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하고 또 구합니다.

양심이 화인 맞으면 의의 기준이 무너져 죄감은 커지고 심판의 말씀도 농담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말씀이 상처가 된다고 하셨는데, 성령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셔서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게 하시고, 오직 순종하는 그 삶 자체로 신앙의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 증거 있는 삶이기를 결단하고 선포합니다.


지금까지 그러하셨듯,

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증거 있는 삶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이끄시고 또 이루실 성령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0~21


둘째 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제목으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말씀하시며 인용한 말씀입니다.

'교회와 셀 가운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훈련된 사람이라는 말씀으로 모세의 믿음이 내 것이 되게 하라고 말씀으로 조목조목 깨우쳐주셨습니다.

40년이 지나도록 자기 양이 아닌 남의 양을 치며 살았으나 그 시간을 섬기는 자로 성실하게 살았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일하시는 때였으며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하십니다.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기쁨의 교회에 있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하나님의 때를 살 수 있다고 하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완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포되는 말씀 앞에서 마음도 입술도 부정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며 성령의 불로 제 안의 죄의 찌꺼기까지 모두 태워달라고 부르짖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악한 것이 드러난 것 같이 수련회를 통하여, 제 안에 남아있는 종교의 세력이 태워지기를, 그래서 셀 영혼을 섬기는 일을 일로 일하지 않고 모세의 거룩함으로, 그의 온유함으로, 더 나아가 예수님의 긍휼함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고 또 구하는 마음을 아버지께 올려드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신 대로, 믿음으로 계산하고 결단하여 올려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해달라는 중보를 자신의 생명을 걸고 구한 모세의 영혼 섬김의 겸손이 제 안에도 주어지기를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복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도록 말씀으로 거룩해지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깨끗한 그릇이 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특히, 자기 가계의 문제를 돌파한 이브라함의 믿음에서 아브라함은 좋은 집안의 자녀도 아니었고, 형은 일찍 죽고, 우상을 섬기는 집안, 나이가 많도록 자녀가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다는 말씀은 또 다른 깨달음으로 제게 도전을 주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할 것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을 쓰신다.'라는 말씀은 곧 저를 쓰시겠다는 말씀으로 저의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저의 어떠한 영광을 구할 것이 없는, 즉 세상의 영광이 될 만한 조건이 없는 사람이기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딱 맞는 이유임을 생각하니, 바디매오 같고 아브라함 같은 '내가 할 수 없음'의 조건들이 감사와 기쁨으로 차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조건 없음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이유가 되었다.'는 말씀은 저의 헤브론 그리기에 충족되는 조건이 한 가지도 없는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더욱 충만해졌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아직은 자기 땅이 아닌 약속의 땅을 받은 것처럼 즐거워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은 믿음뿐이라고, 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선 스타일, 곧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믿어져야 순종할 수 있다는 말씀 앞에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처럼 선포되는 말씀마다 순종으로 나갈 것을 결단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벌써 셋째 날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양육함에 있어 그의 분별의 능력과 왕을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의 실제가 어떠했는지 말씀을 통하여 더 큰 깨달음으로 저를 찾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세가 이중 국적을 갖고 살면서 겪었을 정체성의 갈등, 그 갈등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통치자 세상 임금, 즉 사탄을 두려워하게 하고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세상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세 어머니의 믿음이, 모세를 그 시대의 지도자로 세울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두려워하는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두려움의 근거는 세상 기준에 눌리는 무기력이 원천이고 그것은 결국 사탄의 도구일 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하십니다.


이중 국적을 갖고 세상의 통치를 받고 사는 삶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굽의 신분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에서, 포기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것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신분이나 권리를 포기해야 했던 모세의 어려움은 그를 40년이나 애지중지 키워준 애굽의 공주까지 배반해야 하는 아픔이었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프게 가슴을 헤집었습니다.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혼의 올무가 된다는 말씀이, 지금 제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에 답을 주는 말씀이 됨에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에 속해 사는 삶에서, 육체를 즐기는 삶에 따르는 것들을 반납하고, 포기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에 따르는 약속,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애굽의 모든 낙을 거절한 모세의 삶을 제 삶에 대입시켜나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올해 제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제게' 한국어교원'이라는 헤브론을 그리게 하시고, 그것을 이루는 데 걸림이 되는 조건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수련회 말씀을 통하여 돌파해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들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매주 선포되는 말씀과 수련회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새김질하여, 그 말씀의 원리를 따라 순종으로 나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주시는 비전을 저의 한계에 묶어두지 않고 돌파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인 된 삶을 살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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