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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깊이 읽기

수로보니게 여인 2014. 12. 15. 01:03

 

 

‘한송이 꽃보다 강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어찌 하소연을 계속하랴.’

추억의 장을 하나 펼치자, 셰익스피어가 지은 시(詩)인 ‘소네트’ 구절이 떠오른다. 이상한 일이다. 30여 년 전, 미국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 ‘또 하나의 나라’에 삽입된 시였는데,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홀로 찾아낸 심산유곡의 꽃이라고 할까. 연모하는 남성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청초한 들꽃 같은 여성의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반대로 ‘내 그대를 여름날의 한낮에 비유해도 될까요’라는 소네트 18절은 남성이 여성에게 유혹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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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셰익스피어 문학

이처럼 누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시 중에서 한 문장씩은 기억한다. 셰익스피어 문학의 보편성이다.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너무 넓고 무궁무진해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영국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서 셰익스피어를 빼면 그 절반은 없어질 것이다. 영문학 비평의 역사는 바로 셰익스피어 비평의 역사에 다름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극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미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세계 각국 번역의 개작과 모방을 통해서도 살아남고,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주목을 끌어내고 있다. 영문학자 코울리지는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들은 관찰이 아니라 명상이라는 심안(心眼)을 통해 창조된 인물”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올해는 셰익스피어(1564-1616) 탄생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생일인 4월 23일에 영국 전역에서 축제가 열렸다.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에서는 대규모 거리 행진이 펼쳐졌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리면 스트랫포드 역에 닿는다. 잠시 걸어가면 중세 튜더 양식의 집들로 이뤄진 고풍스러운 도시가 나타난다. 셰익스피어 생가 마을이다.
셰익스피어 생가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 언급됐던 것들을 뽑아서 심었다. 생가에 들어가면 가죽 장갑을 제조하고 가죽을 무두질하던 장인이었던 작가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의 작업실과 8개의 방, 16세기 당시의 침대와 가구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이 마을 최대의 볼거리는 1964년에 개관한 셰익스피어 센터다. 세계 최대 규모의 셰익스피어 라이브러리와 아카이브, 박물관을 갖추고 있다.

셰익스피어 열풍은 그의 고향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을 휩쓸고 있다. 워싱턴 DC에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컬렉션이 있고,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장을 본딴 도쿄의 글로브 극장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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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출생 도시에 세워진 셰익스피어 센터

캐나다의 ‘짝퉁’ 스트랫퍼드 시

캐나다에도 스트랫퍼드가 있다. 일종의 짝퉁인 셈인데, 셰익스피어 생가 마을보다 더 셰익스피어 축제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스트랫퍼드 시는 캐나다 동부 온타리오주 토론토 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km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다. 1832년 이곳에 ‘셰익스피어’라는 호텔이 있었다. 누가 이곳에 셰익스피어 그림들을 선물한 것을 계기로 이 도시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 시가 됐다. 철도 노선을 따라 발전하던 이 도시의 주력산업인 가구산업과 철도 관련 정비산업은 2차대전을 전후해 쇠락을 길을 걸었다.
잡지사 기자였던 톰 패터슨은 문화 재생 방안으로 스트랫퍼드 연극 축제를 생각해냈다. 영국으로 달려가 열정적으로 설득한 끝에 개막 공연에 영국의 권위 있는 셰익스피어 전문 감독인 타이론 구트라를 예술감독으로 초빙했고, 신화적 셰익스피어 배우인 알렉 기네스에게 주인공을 맡길 수 있었다.
1953년 텐트를 개조한 셰익스피어 봉헌 극장에서 펼쳐진 정통 셰익스피어 극에 관객들은 넋이 나갔고, 열광적 박수를 보냈다.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은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열린다. 셰익스피어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현대극 등이 동시에 펼쳐지는 페스티벌은 세계 3대 연극 영화제로 꼽힌다. 해마다 6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는다. 이곳에서 1976년 연극 ‘헨리 5세’로 데뷔한 영화배우 윌리엄 허트, 마사 헨리 케이트,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 명배우들이 탄생했다. 할리우드 악동 저스틴 비버도 이곳 출신이다. 올해는 5월부터 10월 말까지 스트랫퍼드 페스티벌 극장에서 공연된 ‘리어왕’이 강력한 구성과 숨막힐 듯한 배우들의 명연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스트랫퍼드 시는 마치 도시가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꾸며졌다. ‘발자크 카페’ 등 유명 작가의 이름을 딴 가게와 셰익스피어 관련 앤틱 상점들이 눈길을 끈다. 페스티벌에서 배우들이 입었던 연극용 의상 수천 벌을 전시한 뮤지엄도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이곳에서는 관람객들이 셰익스피어 배우들처럼 차려입고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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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스트랫퍼드 시

BY 2.5

 

올해 셰익스피어 축제는 그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퍼드에 머물지 않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또 국제적 파급력을 갖는 뉴 미디어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런던의 셰익스피어 전문극장인 글로브에서는 탄생 450주년을 기념한 〈햄릿〉 세계 순회공연의 막을 올렸다. 런던을 시작으로 2년간 205개국을 돌며 진행될 예정이다. 북한과 시리아 공연도 추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의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지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영국 브리스톨 올드빅 극장의 〈한여름밤의 꿈〉이 공연됐다. 영국 연출가 톰 모리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형극단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가 공동 작업한 작품이다. 지난 2월 런던 바비칸 센터를 시작으로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홍콩, 서울 등으로 세계투어 중이다. 등장인물인 허미아는 물 빠진 허름한 청바지에 세탁한 지 오래된 듯한 점퍼 차림으로 등장한다. 극에서 인형들은 초자연적인 정령들을 접하면서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예컨대 요정의 왕 오베론의 부하 퍽의 발은 포크와 숟가락, 몸통은 나무바구니로 이뤄졌다.
재일동포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이 노래하는 〈샤일록〉도 지난 4월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의 각색과 연출에 의해 원작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오직 5장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인 샤일록이 일약 공연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국립오페라단은 11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스티븐 로리스 연출의 오페라 〈오텔로〉를 선보였다. 드라마틱한 오텔로의 음악은 영국 출신 지휘자 그레엄 젠킨스가 지휘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도 문학성과 음악성을 고루 갖춰 완벽한 희극으로 평가받는 〈십이야〉를 각색한 〈트랜스 십이야〉도 지난 10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아트센터K에서 펼쳐지고 있다.

수수께끼의 삶

셰익스피어의 삶 자체도 희곡적이었다. 셰익스피어 원작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문학 천재인 셰익스피어가 시골뜨기였을 리 없다며 당대의 저명한 극장가 크리스토퍼 말로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옥스퍼드 백작 드비어 경,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원작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을 예로 들자면, 그의 에세이와 문체를 볼 때 셰익스피어와 닮은 점이 전혀 없다. ‘얼굴없는 작가설’은 이 위대한 극작가를 상류 귀족계급 출신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바람일 뿐,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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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춤의 요정 오베론〉 역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2006년에는 셰익스피어가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였다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런던대에서 강연하는 극작가 폴 스트라이츠는 자신의 저서 『옥스퍼드; 엘리자베스 1세의 아들』이라는 책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책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 영국과 결혼했다는 얘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1세가 사생아를 몇 명 낳았고, 1548년 비밀리에 낳은 첫 번째 사생아가 바로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한다. 셰익스피어도 이를 알고 있었고, 햄릿과 소네트에 이런 내용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10대의 엘리자베스가 야심이 많은 궁정 신하 토머스 세이모어 경과 로맨스를 가졌으며, 이 로맨스 후 임신-출산으로 한동안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일부 문학전문가는 셰익스피어가 동시대를 살았던 세르반테스와 스페인에서 만났을 것이라는 주장도 늘어놓는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공식 기록 속에서 딱 1년간 셰익스피어가 사라졌으며 이 기간 동안 스페인으로 건너가 세르반테스를 만났다는 주장을 편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 사망했다.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로 지정됐다. 어떤 사람들은 비극 〈햄릿〉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는 행복하게 죽었고, 〈돈키호테〉라는 희극을 쓴 돈키호테는 길에서 비극적으로 사망했다고 맞비교하기도 한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셰익스피어를 “규칙을 무시한 야만인”이자 “익살과 공포를 마구 섞는 광대”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전(全) 시대의 비판과 비평을 쓸어버리고, 그의 천재성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45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에 다시 도전해봄 직하다. 셰익스피어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자 천재였고, 지금 시대에도 빛을 던진다. 햄릿이 친구 호레이쇼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팍팍하기만 한 우리의 삶을 성찰해보자.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잖은가. 죽을 때가 지금이면 아니 올 것이고, 아니 올 것이면 지금일 것이지. 지금이 아니라도 오기는 할 것이고, 마음의 준비가 최고야. 누구도 자기가 무엇을 남기고 떠날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어떻단 말인가. 순리를 따라야지.”

글 예진수
저자이미지

<문화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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