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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모자

수로보니게 여인 2013. 2. 28. 13:33

 

[만물상] 임금님 모자

  •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 2013.02.28 03:05

    미국인 로웰은 188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신기하다는 듯 적었다. "조선은 모자의 나라다. 집안에서 신발은 벗지만 모자는 쓰고 있다." 그는 "밥상을 받으면 겉옷은 벗어도 모자는 쓰고 먹었다"고 했다. 1905년 '극동전쟁'을 쓴 프랑스인 갈리도 혀를 내둘렀다. "조선의 모자 종류를 모두 늘어놓는 건 불가능하다. 4000종은 넘을 것이다." 어떤 서양인은 아예 조선을 '모자 발명국'으로 대접했다. 비슷한 구한말 외국 기록은 수없이 많다.

    ▶김홍도나 신윤복 풍속화에 나오는 인물도 하나같이 모자를 썼다. 밥 먹는 양반, 춤추는 무동, 시골 훈장, 악공(樂工), 돗자리공, 대장장이, 점쟁이, 혼례식 신랑, 포졸, 기생까지 신분과 직업에 맞춰 모자를 골라 썼다. 모자마다 관(冠)·건(巾)·모(帽)·립(笠)처럼 격에 어울리는 뒷말이 붙었다. 사대부는 집안에서 정자관으로 멋을 냈고 때론 간편하게 탕건만 썼다. 관리는 사모를, 평민은 초립이나 패랭이를 눌러 썼다.

    ▶1000원 지폐에서 퇴계는 유생을 나타내는 복건을 쓰고 있다. 5000원짜리에서 율곡은 정자관을 썼다. 중국 북송(北宋) 유학자 정자(程子)가 처음 썼다는 모자다. 만원권 세종대왕은 정무를 볼 때 썼던 익선관(翼善冠) 차림이다. 일부러 그렇게 그리진 않았겠지만 맨머리는 한 분도 없다. 미국 달러에 등장하는 일곱 대통령 중에 모자 쓴 이는 없다. 실크 모자로 유명한 링컨조차 안 썼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훔쳐간 세종대왕 익선관으로 보이는 유물이 나왔다. 여러 번 손 바뀜 끝에 일본 소장가가 갖고 있던 것을 지난해 경북 성주 사람이 사들였다. 경북대 연구팀이 다섯 달 고증해 '세종대왕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냈다. 익선관 속엔 훈민정음 해례본 첫 장(章)인 제자해(制字解) 문장이 들어 있다. 테두리 문양은 세종 때까지만 왕의 상징으로 삼았던 '발톱 넷 달린 용(龍)'이라고 한다. 진위를 가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조선 임금의 익선관은 매미의 오덕(五德)을 본떴다. 글월 문(文), 맑을 청(淸), 청렴할 렴(廉), 검소할 검(儉), 믿을 신(信)이다. 고종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프랑스 화가 드 라네지에르는 "조선에서 모자는 외관의 소품을 넘어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라 했다. 그때 모자는 책무를 다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뜻했다. 정권이 바뀔 때 새로 감투를 쓰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쓰고 있는 모자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