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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손병걸

수로보니게 여인 2013. 3. 13. 14:57

타이틀 아이콘 행복한 문학편지

우수문학도서 선정작가들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문학편지
 
날짜 2013.03.12.
제목 이미 효도를 다 했습니다
수신자 비교우위에 시달리는 친구들에게
도서명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작품명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저자명 손병걸
    

 

 



아빠 식사하세요
밥때만 되면
아이의 목소리 들린다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이제 아홉 살짜리다

 

밥상에 앉으면
이건 김치, 빨개요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아이의 입은 바쁘다

 

요란한 밥상이 물러나면
커피는 두 스푼
설탕은 한 스푼 반
크림은 우유가 좋다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게
깡충깡충 커피를 가져다준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중에서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박스1

이미 효도를 다 했습니다

비교우위에 시달리는 친구들에게

시간은 참 빠르게 흐릅니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 공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작 아빠는 큰 걱정이 없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빠입니다. 그러나 아빠의 선택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 삶의 경험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낡았습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합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눈을 가진 아이의 감각을 존중하고 믿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의 생각을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은 이상적인 것일까요. 입시는 현실일까요. 아이가 묻습니다. 어느 대학을 가면 좋겠냐? 무슨 일을 하면 좋겠냐? 아이는 효도를 하기 위함이랍니다. 아빠는 조곤조곤 대답합니다.  


태어난 것이 효도다. 젖내음 물씬한 옹알이가 효도다. 두 발로 일어나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효도다. 처음 책가방을 맨 귀여운 모습이 효도다. 해맑은 웃음이 효도다. 너는 이미 할 효도를 다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공부다.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삶이다. 아빠든 누구든 의식하지 마라. 반드시 어른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어른을 살게 한다. 열심히 일하게 한다. 행복을 선사한다. 어린 네가 초·중·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에서 청년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한 시대를 이끈다. 아빠를 위해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면 안 된다. 경이로운 청춘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 태어나면서 너는 할 효도를 다했다. 이제는 자신의 행복에 주목해야 한다. 행복은 경쟁에서 오지 않는다. 비교우위는 가치가 아니다. 삶은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가슴 벅찬 발걸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발걸음이 경쾌해야 한다.


가만히 듣던 딸내미가 활짝 웃으며 말합니다. 우리 아빠 멋지답니다. 아빠 또 괜스레 우쭐합니다. 우리 딸내미 여전히, 아빠를 키웁니다. 


손병걸 올림
박스3 박스4
손병걸
1967년 동해에서 태어났다. 1997년경 두 눈 실명,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2005년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구상솟대문학상, 민들레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전국장애인근로자문학상, 2010년 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시집으로 『푸른 신호등』이 있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