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의 제목을 보고 “제목이 뭐 저리 선정적이야” 하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선정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시를 엿보게 만들었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의 제목은 시의 내용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예측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만약 시의 내용이 여러분의 짐작을 빗나게 만든다면? 그래도 이 시는 선정적일까요.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다가 쓰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상징은 가슴이죠. 가슴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브래지어의 역사는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교묘하게 여성의 미를 부각하는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사춘기 이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삽니다. 그런데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니! 보호와 아름다움이라는 명목 아래 문명의 잣대로 재단된 여성의 미(美)는 얼마나 여성의 몸을 억압되고 왜곡하여 왔던 걸까요.
우리는 매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권력과 문명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문명의 그늘 아래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자연스런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문명은 우리를 행복하고 이롭게 만들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문명을 둘러싼 권력의 틀은 너무나 크거나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사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역사와 문명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그 외로운 자리에 이 시는 있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미세한 파동을 읽어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를 쓸 때 익숙하게 생각하던 것이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사고나 사물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 시도 익숙한 사물을 문명의 관점과 결부시켜 놓고 바라보면 시의 넓이가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사물과 세상을 보는 각도를 조금 옮겨놓아 보세요. 또다른 세상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