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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감사합니다, 제게 어둠을 주셔서 / 이기현

수로보니게 여인 2013. 2. 22. 15:39

주여 감사합니다, 제게 어둠을 주셔서
이태훈 기자
입력 : 2013.02.22 02:24


[시각장애인 CCM 음악감독 이기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앞 못 봐…
8세 때 기적 바라고 간 기도원에서 처음 건반 접하고 음악에 눈떴죠
지금까지 작·편곡한 게 500여곡
비기독인도 좋아할 음악 만들고 파스티비 원더처럼, 레이 찰스처럼요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 꺼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개신교 신자라면 누구나 한두번은 듣고 불러봤을 노래 '야곱의 축복'. 이 노래를 편곡하고 프로듀싱한 이기현(31) 음악감독은 앞을 전혀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그의 넓적다리뼈를 부러뜨려 쓰러지게 한 뒤에야 한 민족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허락받는다. 20일 서울 서교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앞을 못 보는 것은 당신에게 축복인가?" 그는 주저 없이 "네"라고 답했다. "보통 한 달이면 두세번쯤 교회나 집회에 찬양 사역을 나가요. 제 연주와 노래를 들은 비장애인 교인들은 '당신이 받은 것을 나눠달라'고 해요. 저는 앞도 못 보는데 말이죠. 그런 순간순간 저를 인도하는 분이 계신 걸 느껴왔습니다."

◇기도원서 뜬 '음악의 눈'

소리엘, 다윗과 요나단, 한스밴드, 강찬, 주리…. 이 감독은 많은 유명 CCM 가수의 노래를 작·편곡하고 프로듀싱한, 이 분야 실력자다. 건반, 기타, 베이스, 드럼, 트롬본, 꽹과리, 장구까지 혼자 악기 10여종을 다룬다. CCM·대중가요 뮤지션 5팀이 소속된 '엠피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를 2008년부터 맡고 있다. 지금까지 새로 작곡하거나 편곡한 가스펠송만 500여곡.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계의 대표적 작·편곡자 겸 프로듀서로 꼽힌다. "일일이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CCM 앨범 전체의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게 50여장, 일부에만 참여한 건 100여장쯤 될 거예요." 이 감독은 "대중가요도 편곡·프로듀싱하지만, 특별히 가스펠을 만들 땐 예배 드리는 마음이 된다"며 "찬양 사역을 할 때도, 연주를 할 때도 늘 내 음악이 온전한 예배가 되길 기도한다"고 했다.


가스펠 500여곡을 작·편곡한 이기현 음악감독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전혀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소리엘, 다윗과 요나단, 한스밴드, 강찬, 주리 등 많은 유명 CCM 가수의 노래를 작·편곡하고 프로듀싱한 이 분야의 실력자다. /이태훈 기자

 

이 감독은 세상을 본 기억이 없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병원의 산소 압력 조절 실수로 시신경이 끊겼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그가 8살 때 마지막 희망을 붙드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데리고 들어가 아홉 달을 지냈다. 그곳에서 처음 음악에 눈을 떴다. "피아노 소리가 신기했어요. 반주자 전도사님께 한번 쳐보고 싶다고 했죠. 처음엔 화음 3개를 알려주시더군요. 쭉 듣고 따라쳤더니 석 달 만에 예배 반주를 하게 됐어요."

이후 그에게 음악은 삶의 전부가 됐다. 처음엔 기타도 눕혀 놓고 음을 짚어가며 가야금 뜯듯 줄을 뜯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악기를 거의 혼자 힘으로 배웠다.

◇"안마사가 아니라 음악가입니다"

낙천적 성격이지만, 청소년기에도 그랬던 건 아니다. 안마사 취업을 거부하고 음악 고집을 꺾지 않아 맹학교 선생님과 충돌도 했다. "그땐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왜 내가 앞을 못 보게 하셨나요, 왜 안마사밖에 못 한다는 겁니까, 그런 원망."

가까스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프리랜서 세션으로 뛰며 조금씩 실력을 인정받았다. 실용음악학원에서 비(非)장애인들에게 앙상블(합주)도 가르쳤다. 그는 "하늘에 계신 분께 음악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특히 '내가 눈멀었으나 지금은 앞을 보네(I was blind but now I see)'라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음악가로서의 꿈에 대해서도 말했다. "'날 수 있다는 걸 난 믿어요(I believe I can fly)'나 '날 세우시네(You raise me up)'처럼, 비기독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음악을 만드는 연주자·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 마음은 늘 화해와 사랑을 말했던 스티비 원더처럼 평화롭고, 음악은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레이 찰스처럼 찐~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