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산군과 부인 신씨 무덤
파란만장했던 그, 아내곁에 고요히
나란히 누워있는 연산군 묘(왼쪽)와 그의 부인 신씨 묘.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1476∼1506년)의 무덤은 평범하다. 크
지도 작지도 않다. 한양의 평범한 양반가 무덤 정도나 될까. 왕릉에서 흔히 보이는 각종 동물석상(말, 양, 호랑이)이나 십이지신상, 무덤병풍석이 없다. 묘비명도 그냥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이다. 그의 동갑내기 부인 신씨(1476∼1537년)도 바로 왼쪽에 누워있다. 역시 비석엔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세월에 닳고 닳아 손가락으로 만져봐야 헤아릴 수 있다. 그들은 1488년 겨우 열두 살 때 혼인했다. 부부 이전에 ‘어릴 적 같이 놀던 소꿉동무’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원(園)은 왕세자, 왕세자비, 임금 어버이의 무덤을 말한다. 묘(墓)는 왕의 아들딸과 왕의 후궁이 묻힌 곳이다. 연산군은 한때 왕이었지만 폐위됐으므로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년)의 첫째 아들로 대우한 것이다.
연산군은 12년 동안 임금 자리(1494∼1506년)에 있었다. 탈도, 말도 많았다.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4년)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날마다 잔치를 벌여 ‘흥청망청’이란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성균관은 유흥장이 됐고,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하던 사간원과 홍문관은 폐쇄됐다. 오죽하면 연산군 앞에서 줄을 타던 광대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비아냥댔을까.
연산군은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했다. 내로라하는 영화배우들이 너도나도 그 역을 맡았던 이유일 것이다. 신영균 이대근 임영규 유인촌 유동근 노영국 정진영 정태우…. 정치와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의 배다른 동생 진성대군(중종·1488∼1544)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연산군은 동생을 전혀 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임금이라면 일찌감치 없애버렸을지도 모른다. 연산군은 시인 쪽에 더 가까웠다. 실제 그가 지은 시가 130여 편이나 전해진다.
‘용렬한 자질로 임금 자리에 앉은 지 10년이 되었건만/너그러운 정사 못하니 부끄러운 마음 금할 수 없네/조정에 보필하고 종사 생각하는 자 없으니/나이 어린 이 몸이 덕이 없나 보구나’ (갑자사화 나던 1504년 3월)
‘너무 애달파 눈물 거두기 어렵고/슬픔이 깊으니 잠조차 오지 않네/마음이 어지러워 애끊는 듯하니/이로해서 생명이 상할 줄 깨닫네’ (1505년 9월)
연산군의 광기는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랐다.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다. 오직 후덕한 신씨만이 그를 눈물로 달랬다. 연산군은 신씨의 말만은 다소곳이 들었다. 하지만 행동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1506년 9월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위리안치됐다. 집 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가봐야 바다가 가로막고 있을 터였다. 교동도는 강화섬 옆구리에 붙은 외딴섬인 것이다. 강화섬에서 배로 15분쯤 걸린다.
연산군은 뛰다 죽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기질에 피 끓는 나이 서른. 호리호리한 몸매에 갸름하고 곱상한 얼굴. 춤 잘 추는 하얀 피부의 꽃미남. 그림과 글씨를 좋아했던 임금. 결국 그는 두 달 만에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신씨가 보고 싶다”며 죽었다. 그리고 그곳에 묻혔다.
연산군 부인 신씨는 살아남았다. 한양 밖으로 쫓겨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신씨의 어질고 착한 성격 덕분이었다. 쿠데타세력은 신씨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종도 ‘군부인(君婦人)’으로 강등됐는데도 ‘빈(嬪)’이라고 부르며 왕세자부인 대우를 해줬다. 1513년 신씨는 중종에게 간청하여 연산군의 묘를 지금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1537년 신씨는 눈을 감았다. 연산군보다 31년이나 더 살다가 그의 곁에 묻혔다. 고단한 세월이었다.
김화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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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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