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20돌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서 활약 김길 시인
○ 20년을 돌아온 시인의 꿈
하얀 도화지에 큰 글자로 시를 쓰는 김길 시인이 보는 세상은 늘 눈부시게 하얗다. 시인의 서재엔 음성 녹음 도서들이 진열돼 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앞이 보이지 않는 시인은 가슴에 쓴 시구(詩句)를 읽는다. 허공을 응시하던 눈동자가 자작시 ‘흔들림에 대하여’를 낭독할 때는 흔들리지 않고 또렷했다. 4일 이른 아침 시인의 집을 방문했다. 녹음도서가 꽂혀 있는 시인의 서재. 자원봉사자들이 서툴게 녹음한 문학작품들이 카세트테이프에 정성스레 담겨 있었다.
흔들리는 풀꽃처럼 시인의 삶은 흔들렸다. 고교시절 백석의 시집을 들고 다니며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을 가린 하얀 안개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 망막색소변성증,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이 눈 속 까만 종이에 맺히지 않았다. 소년은 손때가 묻어 너덜해진 백석의 시집을 더는 넘기지 않았다.
22년이 지났다. 이삿짐 나르는 일, 각종 판매원 일을 헤매다 흐릿한 눈 때문에 번번이 좌절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긴 그는 전단도 돌리고 교복집 볼펜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자꾸만 흐려져 넘어지고 다친 상처로 다리의 흉터가 아물 날이 없었다.
‘강은 무수한 소리의 흔들림/…/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돌들도/있어야 할 곳을 찾아 제 몸 뒤척이듯.’
그런 그에게 다시 시가 찾아왔다. 눈 대신 귀로 시를 읽었다. 복지관에서 녹음한 음성도서로 시를 읽고 문학을 공부했다. 복지관 문학창작교실 강의를 맡은 국문학 교수들도 그의 열정에 감동했다. 4년을 배우며 끊임없이 시를 썼다.
○ “솟대문학은 세상 향한 문”
창간 당시부터 편집자 겸 발행인인 방 씨도 1급 지체장애인이다. 휠체어를 탄 그는 동국대를 수석 졸업했고 KBS 제3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 하늘’의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 씨도 20여 년을 돌아 왔다. “문이란 어쩌면 돌아오기 위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솟대문학은 제가 시의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문이었습니다.”
‘지우고 비워야 가벼워지는 세상에서/지극히 작은 돌 같은 나로 인하여/흔들릴 세상을 바라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오늘도 가슴에 쓴 시구를 읽는다. 풀꽃처럼 흔들렸던 시인은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시인도, 솟대문학도 이제는 ‘나로 인해 흔들릴 세상’을 꿈꾼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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