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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인가 바다끝인가··· 오래된 파도만이 그 답을 알까

수로보니게 여인 2011. 3. 6. 15:09

 

땅끝인가 바다끝인가··· 오래된 파도만이 그 답을 알까

땅끝 해남에 연초록 봄이 쳐들어왔다. 살금살금 도둑처럼 상륙했다. 바다는 이미 봄물로 출렁인다. 따사로운 햇살에 은물결금물결 뒤척인다. 봄을 가득 싣고 온 섬들은 노르망디 상륙 연합함대처럼 기세등등 버티고 있다. 점점이 떠있는 전복 양식장이 상륙고무보트들 같다. 마늘밭은 이미 연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 위로 아지랑이가 꼬물꼬물 올라간다. 수평선 저 너머 하늘엔 는개가 피어올라 아슴아슴하다. 바람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봄이 참 달다. 해남=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살면서 몇 번은 땅 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것이

땅 끝은 늘 젖어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나희덕의 ‘땅 끝’에서>》



땅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시작이다. 아니다. 바다의 끝이자, 땅의 시작이다. ‘끝의 끝은 다시 시작(오세영 시인)’인 것이다. 땅과 바다가 그어놓은 ‘출렁 금’이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가슴이 울렁인다. 어찔어찔 머리가 어지럽다. 발바닥이 간질간질, 귓속이 우렁우렁 젖어온다.

해남은 한반도의 등뼈가 마지막으로 불끈 치솟아 멍울진 땅이다. 그림 같은 땅이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절하고 싶고,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싶은 땅(고정희 시인)’이다. 산은 우뚝우뚝 솟아있고, 그 사이사이엔 기름지고 옹골진 땅이 우묵배미로 누워 있다.

땅끝에 서면 검정 선(線)과 파랑조각의 ‘몬드리안의 바다(이흔복 시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추상화가 몬드리안(1872∼1944)에게 바다의 수평선은 아늑한 어머니의 품안이다. 나무의 수직은 힘차고 억센 아버지의 어깨이다. 해남 앞바다는 은물결 금물결로 뒤척이다가 한순간 산더미만 한 파도로 으르렁거린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고은 ‘땅 끝’ 전문>

 

 해남은 황토 흙의 부드러움과 꼬리뼈 같은 달마산의 강골이 버무려져있다. 두륜산 대흥사는 아늑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소박하고 호방하다. 두륜산은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 그대로 낮고 부드럽다. 달마산은 바위가 삐죽삐죽 강골이다.
요즘 땅끝에 가면 새물내가 난다. 갓 빨래한 새 옷 냄새가 새록새록 우러난다.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면 손에 잡힐 듯 올망졸망한 섬들이 점점이 횡대로 떠 있다.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일도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아뿔싸! 섬들은 이미 파릇파릇 봄이다. 동백꽃 망울들이 부풀어 터질 듯하다.

그렇다. 연초록 봄은 이미 땅끝 해남에 상륙했다. 앞 섬들이 힐끔힐끔 뭍을 바라보는가 했더니, 한순간 우르르 떼를 지어 밀려왔다. 땅끝 전망대에서 좌우 해안 따라 이어진 77번 도로는 이미 봄의 점령군에 무너져 나른하게 맥이 풀렸다. 마늘밭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보리밭도 검푸르다. 아지랑이 떼들은 해남읍내 벌판 논두렁에서 꼼지락거린다.
 

                                            

마늘밭에 영양제를 뿌리고 있는 농부.

그 옆으로 우뚝우뚝한 달마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남땅은 온통 붉은 황토이다. 고구마가 꿀맛이다. 고구마막걸리도 맛있다. 겨울엔 보리밭과 마늘밭이 그 붉은 황토밭에 굳게 뿌리를 박고 견딘다. 가녀린 연초록 싹들이 칼칼한 바닷바람에 이를 앙다물고 맞선다. 바닷바람은 겨우내 아기보리, 아기배추, 아기마늘을 ‘검푸른 억센 풀’로 단련시킨다.

 
77번 해안도로를 따라 강진 쪽으로 걷다 보면, 전복 김 파래양식장이 햇살에 자글자글 빛난다. 통통배 어부들의 손놀림이 부산하다. 해안 등성이 마늘밭 농부들은 황토땅에 코를 박고 호미질에 바쁘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아래에선 동네 개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왁자하게 씨름판을 벌인다.

해남의 봄은 어느 길이든 다 좋다. 달마산(489m·송촌마을∼송촌저수지∼수정골∼임도∼관음봉∼작은 바람재∼미황사 3시간 코스)에 오르면 한쪽에선 남해바다가 출렁이고, 또 한쪽에선 정갈한 해남 벌판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달마산은 남해바다와 평행으로 칼금을 내며 우뚝우뚝 늠름하게 서 있다. 작은 월출산이다. 팔짱을 낀 채 바닷바람을 완강하게 막아준다. 도솔암은 달마산 어깻죽지에 새집처럼 매달려 있다.

대흥사 주차장에서 대웅전에 이른 길은 ‘오래된 숲길’이다. 이른바 ‘아홉 숲’에 ‘긴 봄’이라는 ‘구림장춘(九林長春)’이다. 4km에 가까운 십리길이다. 늙은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나무터널을 이룬다. 여름이면 햇볕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이다. 두륜산(706m)은 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다. 매표소∼장춘동∼대흥사∼삼거리∼북미륵암∼천년수∼만일재∼두륜봉∼진불암∼물텅거리골∼표충사∼대흥사 코스는 천천히 걸어도 4∼5시간이면 충분하다.

두륜산은 영락없이 ‘누워 있는 부처님 형상’이다. 일지암은 부처님 머리 바로 아래에 목침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1786∼1866)가 1824년 서른여덟 때 손수 짓고 42년 동안 머물렀던 암자이다. 초의가 동갑내기 추사를 만난 것은 1815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1840∼1848)엔 다섯 번이나 그를 찾아가 위로했다. 초의와 추사의 관계는 각별하고 허물이 없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백수 늙은이가 가소롭게도 한때 절연할 생각까지 품었음을 고백하네. 나는 스님은 물론이고 스님의 글까지도 보고 싶지 않네. 다만 차와의 인연을 끊어버릴 수 없으니…두 해나 쌓인 체납세를 보내시게.’

초의는 1809년 그가 스물넷일 때 다산을 만나 그로부터 주역과 시문을 배웠다. 다산은 스물넷이나 아래인 추사 김정희(1786∼1856), 초의선사와 허심탄회하게 학문을 논했다. 일지암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가끔 이들과 외가인 녹우당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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