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그린 별유풍경別有風景
오월이, 하루에 하루를 더해가며 깊은 초록으로 물들어가던 어제,
그러니까 가정의 달(月)속에 스승의 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15일.
한울문학 소속 서울경기지역 수도권지회는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 채수영 박사님의 문사원(文士苑)을 찾았다.
지난 가을 내가 등단이라는 의식을 거치면서 한울의 일원됨을 공히 하고 첫 나들이를 하던 날처럼.
시인이며 문학비평가로 시단의 현존하는 빛 같은 박사님의 약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다.
이름 하여 읊기에도 숨 가쁠만한 자취와 공적은 싣지 않기로 하겠다. 그런 외형적인 것들이 그분의 본질은 아닐 터이기에
마침, 박사님의 열다섯 번 째 시집『사랑, 울렁이는 그 이름에게』가 출간 되어 문사원으로 전해진 날,
우리를 맞으시는 흔적을 보기만 해도 정겨운 한지위에 남기라시며.
황혼의 영혼이 서성이는 시집 뚜껑을 열어 친필 사인을 일일이 해 주시는 세심함에 眞髓를,
여러 갈래로 교차되는 마음위에 感激함을 더하여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방금 밭에서 돌아오신 농부의 그것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오월날씨의 온화함보다 따듯하고 더 친화적인 모습에 예쁜 공주의 마음까지 더움으로 얹어서…….
섬김의 몸짓이 자연스러운 아동 문학가이신 사모님,
그래서인지 어린이의 순수함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묻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니 그 분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품이리라!
내가 한 여자를 사랑했을 때
세상은 파도 일렁이는 바다였었다!
오월 같은 청년시절 사모님을 만나셨을 때의 마음이려니……
새롭게 수도권지회를 위해 애쓰실 회장님과 부회장님 소개에 이어 부회장님의 잔잔한 낭송
한울문학 안에서 낭송가의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있는 심정자 선생님.
깊고 투명한 읊음은 듣는 이들의 심연의 골짜기를 이슬처럼 스며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늦게 시단에 입문을 하셨다는 윤의섭 선생님.
시인의 문학을 향한 열정을 보며 ‘과연 나이 듦이란 육체라는 물질에 영향을 미칠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 뵙는 선생님인 듯. 어쩌면 뵙고도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아! 희나리처럼 빛 잃어가는 나의 기억력이여……
이명주 시인의 낭송도, 방금 빚은 에머랄드빛 하늘에 구름을 띄우는 바람소리로 듣는 이의 가슴속을 지나갔고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낭송은 작은 내 가슴을 더 오그라들게 했다.
고교 시절의 선생님이 불현듯 떠오른 스승의 날 전화 한통 드리지 못한 죄송함에
이름을 다 기억치 못하는 시인들의 낭송은 지붕 끝에서 바람을 맞으며 웃는 풍경風磬소리와,
기웃기웃 담을 넘어와 초록빛 미소를 짓는 나뭇잎과 어우러져 한 점 별유풍경別有風景을 그려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물방울 원피스에 레이스 머플러를 두른 예비 시인은 용기도 가상해 무슨 노래인가를 부른 것으로 기억 된다.
이렇게 정겹고 행복한 자리를 바람도 그냥 갈 수 없다며 시구詩句가 적힌 종이를 살짝살짝 뒤집어본다.
지회장님은 바람을 잡으려는 손짓을 해보지만……
황금찬 선생님의 시를 낭송 지도 강사 장충열님이 낭송 할 때는, 바람처럼 너울거리는 피리?소리가 허정당 안 밖을 넘나들었고
군 시절 봉우리를 일곱 개를 못 넘고 여섯 개만 넘어 육봉六峰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다는 시인은,
행시도 시의 한 장르라고 구분지어 행시문학의 길을 개척해 입문했다는 일화를 남기며 그 이름을 공히 한 자리이다.
도착해서 자리를 잡아 앉았는가 했을 때 벌떡 일어나더니,
“저 제가 무식해서 그러는데요”라며 뒤에 보이는 현판의 ‘허정당’의 ‘허’가 무슨 글자인지를 스스럼없이 질문하던 패기 또한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뿐만이 아니다.
박사님의 시 ‘문자메시지’를 자신이 낭송하려 했는데 기회를 나에게 빼앗겼다며 아쉬워하던 열의도
내가 갖고 싶은 적극적 성향의 한 부분이다.
오늘(5월 23일)은 선생의 블로그 'http://blog.daum.net/yukbong' 방문을 해봐야겠다.
이천3선 시장을 지냈다는 유승호 전시장님.
피천득님의 수필 ‘오월’에서 한 부분을 발췌해 낭송하시던 모습에서
감성이란 머무는 이가 구별이 없는 오관五官 중의 하나라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도 한 자락 읊어보련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는데…
한국문단의 큰 어른 황금찬 선생님!
1918년에 이 땅에 오셔서 일제강점기를 머리로 가슴으로 부딪히며 문학을 지켜 오신 문학계의 큰 나무.
“‘칼로 쓰고, 피로 쓰고, 총으로 쓰기에 노벨상을 받지 못한다’하시며
‘사랑의 마음으로 평화를 짓는 글을 쓰며, 글 속에 행복의 원소를 넣어 글을 쓰라.’
‘문학을 생활화 하라’
‘출세에 목적을 두지 말라
‘책을 많이 읽으라.”
어제(옛날)도 오늘처럼 강조하시던 말씀은 ‘시어 선택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찬탈을 넘어서지 못한 수치는 “죽을 지경으로 책을 읽지 않음에서 온 결과”라고,
그날을 잊으면 결코 안 된다고,
자녀들에게도 교양서적을 두루 섭렵하게 하라고 강점기 시절을 손꼽아 헤아리시던 모습에서
문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짚어보기도 했다.
박사님 역시 그 날처럼
“사람을 본질로 하는 글을 쓰라.
자연 현상과 그 대상 즉, 사람을 통찰 할 수 있는 글이라야 비로소 글다운 글이라 할 수 있다.
자내증自內證 즉, 스스로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아 가짜 문학을 하지 말라.
기왕에 문학인이 되었으니 문학을 위해 모든 걸 바치라.
한 편의 시 속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글을 쓰라”……는
심비에 새겨두고 형태소 하나하나를 옮길 때 마다 음미해야 할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찜해놓은 글 ‘문자메시지’를 누가 낭송해버리면 어쩌나.
가슴 조이던 박사님의 시를 읊을 순서가 드디어 내게로 온 순간이다.
문자 메시지
채수영
불면의 늦은 밤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부지 밤바람이 차네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찬 바람에 문득 죄송하여 연락 드리네요
11/26 11:46 pm
016-709-62--"
이 밤, 뉘의 자식일까.
잘못 찾아온 방문
따스함에 가슴이 젖는다. 죄송을
모르는 자식들은 잠들었을 터인데… 아까워
지우지 못하니 다시
기침이 난다
박사님의 열다섯 번 째 시집에 수록된 시
‘문자메시지’를
感泣함으로 낭송을 했다.
낭송을 하는 것은 싯구인데
솟아나는 것은 죄송함이었다.
불면의 밤, 아부지가 토해내셨을 기침처럼
밭은 소리로 꾸역꾸역 이어졌다.
이천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이렇게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귀중한 순간을 렌즈 속에 담아두고
준비된 만찬으로 즐거움을 더하였다.
나를 위해, 한울문학을 위해, 이 땅에 모든 문인들을 위해.
나는 젓가락 높이 들고 브라보를 외쳤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 앉아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여가는 길을 돌아오며
문사원에서 보낸 오월속의 찬란하던 순간을 모두의 가슴속에 지지 않을 생명빛으로 묻어 두었으리!
우리가 한자 한자 찍어 내는 글의 색깔도 그와 같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존재
글/여울
풍경은
바람이 지나야 존재됨이 드러난다
나뭇잎도
바람이 만질 때라야 비로소 뒤척일 수 있다
바람도
풍경의 울음 없고
나뭇잎의 떨림 없이
홀로 존재를 드러낼 수 없듯
우리는 ‘서로’일 수 있을 때
‘나’ 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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