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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수로보니게 여인 2010. 1. 19. 00:22

 


1930년대 구인회

처음이자 마지막 발간이 되었던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이 있기까지 


구인회가 단 한 번의 앤솔로지 발간이후 더 이상의 문학적인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은 내재적 원인과 외재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재적 원인으로는 우선 이들이 순수문학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라는 식민지 상황에서 많은 양심적인 이들이 고통 받는 현실에서 순수문학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쉽지 않은 길이었으며 더구나 이들이 추구한 문학적 성향은 모더니즘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더니즘은 해체과정에 있던 당대 사회에 대한 문학적 대응으로서 해제된 세계를 재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찾고자 했던 서구적 의미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구인회의 그것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근대성에 대한 수락이자 지향을 뜻하면서 동시에 예술적 세련화를 통해 미의 영역에서 근대적인 것을 선취하려는 의식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근대성을 미처 체득하지 못한 조선의 현실과, 예술의 영역과 사회적 영역이 끊임없이 배타적 관계로 작용하던 식민지적 파행성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모더니즘은 근대적 감수성의 탐닉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종의 고전적 반근대적 지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구인회 내부의 이질적 성향은 모더니즘의 본래적 성격(이중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인회의 경우 두 가지 경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착종된 형태를 띠다가 결국 분화ㆍ편향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근대가 타율적으로 강제된 것이며 이로부터 근대성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해야 합니다.

 외제적인 요인으로는 구인회에 참가한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 등 물론 이후에 몇 명이 바뀌기는 하지만 비록 이들이 순수문학을 지향한다는 취지하에 모였지만 친일파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는 유치진이나 한국 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정지용 등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ethnos44(2009-10-09 01:03 | 출처 : 본인작성)


九人會(구인회)

1933년, 경향문학)에 반발하여 순수문학을 지향하고자 아홉 사람으로 조직한 동인회. 이종명, 김유영의 발기로,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 등이 창립하였으나 뒤에 이종명, 김유영, 유치진, 이효석, 조용만 등이 그만두고, 대신 박팔양, 박태원, 이상, 김유정, 김환태 등이 새로 들었음

 

 


경향문학傾向文學

프로문학(프랑스어)prolétariat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