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2월 조선일보사가 발간한《한글원본》개정판의 표지. 이 책은 이번에 처음 실 물이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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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일보가 펼쳤던 전국적인 문자보급운동의 교재 《한글원본》의 1931년 개정판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 책은 1930년 발간된 《한글원본》의 초판보다 분량이 두 배 늘어났으며, 문자보급용 〈아리랑〉 노래 등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음이 드러났다.
서지학자인 김연갑(金煉甲)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최근 입수한 이 책의 원본을 13일 공개했다. 가로 11.3㎝, 세로 17.2㎝, 32쪽의 분량으로 간편하게 지니고 다닐 수 있게 제작된 이 책은 '文字普及班用(문자보급반용) 한글원본 첫째'라는 제목 오른쪽에 한 손에 농기구를, 한 손에 책을 든 남자의 모습이 그려졌으며, 아래쪽에는 '朝鮮日報社 刊行(조선일보사 간행)'이라 쓰여 있다. 저자는 초판과 마찬가지로 국어학자이자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장이던 장지영(張志暎·1887~1976) 선생이었다.
▲ 1931년《한글원본》 개정판의 본문. 19장 〈배움〉과 20장〈아리 랑〉이 실린 부분이다.
이 책은 언론학자인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지난 1999년 펴낸 《문자보급운동교재: 조선일보·동아일보 1929~1935》(LG상남언론재단)에도 소개되지 않은 책이다. 정 교수는 "1931년 7월 17일자 조선일보에 표지 사진과 함께 10만부가 증쇄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교재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첫 쪽에 'ㅏ ㅑ ㅓ ㅕ'로 시작되는 모음 11자와 'ㄱ ㄴ ㄷ ㄹ'로 시작되는 자음 14자를 적어놓은 뒤, 다음 쪽부터 '가 갸 거 겨'에서 '화 훠'에 이르는 음절과 '고기' '누구' '누나'처럼 이 글자들이 들어가는 낱말의 예를 들어 알기 쉽게 편집했다.
여기까지는 지난 1986년 발견된 《한글원본》 초판(16쪽 분량)과 같지만, ▲본문 앞에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넣은 부분 ▲모음과 자음 다음에 '一 二 三 四'의 한자 숫자를 소개한 부분 ▲18장 〈부지런〉, 19장 〈배움〉, 20장 〈아리랑〉, 21장 〈제각금할일〉 등은 초판에 없던 부분이다. 이 중 〈배움〉에서는 '아는 사람은 �은(모든) 일을 하기가 쉽고 모르는 사람은 �은 일이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배웁시다/ 만히(많이) 배워서 만히 압시다'라고 썼다.
20장 〈아리랑〉도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강산에 방방곡곡/ 새살림 소리가 넘쳐나네/ 에이헤 에헤야 우렁차다/ 글소경 업새란(없애란) 소리높다'라는 1절에 이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별고개라/ 이세상 문맹은 못넘기네'라는 후렴과 2·3절로 이뤄졌다.
김연갑 이사는 "이것은 1931년 1월 7일자 조선일보에 악보가 수록된 박봉준(朴鳳俊) 작사, 김형준(金亨俊) 편곡의 〈문자보급가〉와 같다. 당시 조선일보의 문자보급가 공모에 가작으로 당선됐던 이 노래를 '문자보급 아리랑'으로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현재 제작 중인 국악인 김영임씨의 음반 《정본 서울아리랑》(신나라레코드)에 수록될 예정이다. 김 이사는 "당시 80%에 달했던 문맹자들도 대부분 아리랑 가락은 알고 있었다고 볼 때, 조선일보가 얼마나 철저하게 민중들에게 문자를 보급할 의지가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가 1929년 7월 14일 전국 규모의 '귀향 남녀학생 문자보급운동'을 벌임으로써 시작된 대대적인 한글 보급 운동이다. 이후 1936년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의해 주도됐다. 당시 80~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려는 계몽운동이자 항일운동이었다. 1934년에는 5000여 명의 학생이 이 운동에 참가해 농촌으로 떠났으며, 교과서인 조선일보사의 《한글원본》은 100만 부 넘게 발행돼 무료로 배포됐다. 이 운동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로 그려지기도 했다.
▲ 1931년 2월 조선일보가 문자보급운동 교과서로 펴낸 '한글원본'의 개정판을 발견한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입력 : 2008.10.14 03:16 / 수정 : 2008.10.14 06:36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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