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어!/ 사랑하는 그 사람이어!'(〈초혼〉)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의 시에서 사랑의 상실은 이처럼 가차없이 절절하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이후 이별과 그리움이라고 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우리 말의 가장 아름다운 분화구로 터트렸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막론하여 읽는 사람을 그 뜨겁고 눈물겨운, 그리고도 리드미컬한 언어의 호수 속으로 빠뜨린다. 흥겨운 듯 눈물겨우니 이를 어쩌노!
그의 사랑의 깊이와 그에 응하는 말의 질서는 음악으로도 적절하여 우리 시 중 가장 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다. 소월의 대표작 〈산유화〉만 해도 남인수의 가요로, 조수미의 가곡으로 모두 애창됐다.
〈먼 後日〉은 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의 맨 앞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 자신도 대표작으로 생각한 듯하다. '못 잊겠지만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라며 떠나간 임'(〈못잊어〉), '심중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임', 그래서 '산산이 부서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 현재('오늘')도 과거('어제')도 아닌 먼 미래('후일')에도 잊을 수 없다고,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임'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이미 '저만치'(〈산유화〉) 초월한 자리의 임을!
소월은 서른 셋 이라는 황금의 나이에 생아편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자결은,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못잊어〉)라거나,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가는 길〉)이라고 한 그의 '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순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세상을 뜬 소월에겐 김정호(金正鎬)라는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으
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이남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서정주 시인의 집을 출입했다고 하는데 미당의 회고에 의하면 기차에서 수레를 밀고 다니는 장사가 되었다가 그것도 아내의 병간호 때문에 못 하게 됐고, 나중에는 국회 의사당의 수위로 살았다 한다. 최고의 '국민 시인'의 아들의 삶 치고는 서글픈 사연이다.
2008.09.24 03:13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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