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οο ı ĿØЦЁ УØЧ/´˝˚³οο ı Łονё 문화

“납 활자 한개 두개… 수제 책은 향기가 달라요”

수로보니게 여인 2011. 10. 28. 21:18

기사입력 2011-10-27 03:00:00 기사수정 2011-10-27 14:24:09

 

납 활자 한개 두개수제 책은 향기가 달라요”      

 

 

활자가 알알이 박힌 선반을 오가며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고 있는 문선공 김찬중 씨. 활판공방은 수백만 자의 활자를 보유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활판공방’ 개업 4주년… 납 활자로 책 만드는 박한수 대표

 

   덜커덕 덜커덕…. 26일 오전 경기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활판공방’에 들어서자 주조공(鑄造工) 정흥택 씨(71)는 고온에 납을 녹여 새 활자를 굽고 있었다. 기계에서 덜커덕 소리가 한 번 날 때마다 볼록한 활자가 하나씩 세상에 나왔다. 열여섯 살 때부터 50여 년간 주조공으로 일했다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문선공(文選工) 김찬중 씨(60)는 활자들이 알알이 박힌 선반을 분주히 오가며 필요한 활자를 골라냈다. 30년 경력. 눈을 감고도 어느 선반에 어느 글자가 놓여 있는지, 글자의 서체와 호수(號數)까지 맞춰 집어낼 수 있다.

   문선공이 골라온 활자들로 판을 짜고, 이 조판(組版)을 활판 인쇄기에 올려 잉크로 찍어내면 책 한 장이 완성된다. 장인의 손길을 일일이 거치는 이 과정을 통해 활판공방의 스물여섯 번째 책인 ‘서정주 시선집’(12월 출간 예정)이 제작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춘 납활자 인쇄공정. 이를 되살려 책을 찍어내는 파주 활판공방이 4년을 맞았다. 2007년 11월 1일 문을 연 이곳은 지금까지 두 달에 한 권꼴로 책을 찍었다. 대부분 서정주, 박목월, 이육사, 김남조, 신달자, 김초혜, 유안진, 이근배 시인 등의 시선집이다. 500부씩 찍는 책 가격은 권당 5만 원 선. 하지만 제작부터 인쇄, 제본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인건비와 재료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고 박한수 대표(45·사진)는 말했다. 현재 이 공방에선 60, 70대 숙련공 세 명이 일하고 있다.

   종이책을 넘어 전자책의 시대로 가고 있는 요즘, 스스로도 ‘채산성을 생각하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박 대표가 납활자 인쇄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북 디자이너로 일하던 박 대표는 2000년대 초 서체 디자인에 대한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활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레 활자를 만드는 기계와 장인, 활자 문화로 관심이 옮아갔다. “명색이 우리나라가 금속활자의 종주국인데, 컴퓨터 도입 후 납 활자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그리움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사명감으로 이어갔습니다.”
  

   박 대표는 활판 주조기와 인쇄기, 교정기, 식자기 등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한번은 기계를 사기 위해 서울 동대문에 사는 여든 살 넘은 숙련공을 찾아갔다. 그 숙련공이 활자들과 인쇄기 앞에 막걸리를 따라 놓고 절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잘 들어보니 ‘저 사람에게 가서도 잘 돌아가고 사고 없길 바란다’는 말이었어요. 그분은 ‘이걸로 자식 공부를 다 시켰는데 이제 자식들은 내가 이 일을 하는 걸 부끄러워한다. 난 아들도 딸도 싫다. 이 기계들이 내 아들딸이니 제발 다시 살려달라’고 하셨죠.”

   이렇게 기계들을 구입하고 숙련공을 모집해 2002년 서울 상수동의 자신이 운영하는 시월출판사 내에 활판인쇄소를 차렸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 제대로 책을 찍어낼 수 없었다. 2007년 활판공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파주에 정착한 후에야 2008년 첫 시선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오돌토돌한 요철감의 매력을 다시 맛보게 된 그날의 감격은 지금도 박 대표와 장인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

   박 대표는 “4년 내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을 운영하는 게 솔직히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보다 심각한 건 활판을 다루는 장인이 모두 연로하다는 사실. 그는 “앞으로 4, 5년은 책을 더 펴낼 수 있겠지만, 그 이후는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담는 용기까지도 장인의 손길이 배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명품이 아닐까요? 그 가치를 알고 책을 찾아주는 사람이 4년간 하나둘 늘었다는 사실에서 작으나마 희망을 봅니다. 국가에서도 활판 장인들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이 기술이 사라지지 않게끔 하면 좋겠습니다.”

*활판공방 연락처 031-955-0084~5

파주=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blog_icon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