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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하는 인생

수로보니게 여인 2011. 9. 4. 09:46

[박상우의 그림 읽기]발효하는 인생

 

기사입력 2011-09-03 03:00:00 기사수정 2011-09-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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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함께하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발효식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같은 걸 먹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젊은 시절 유학 가는 것도 포기하고 입사 후에는 해외지사 발령도 고사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자신은 발효식품을 고안한 조상님께 감사하며 평생 한국 땅에서 발효음식을 기며 인생을 발효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별명은 ‘발효인생’이 되었습니다.

미생물이 자신의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을 발효라고 합니다. 발효식품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발효식품의 대명사는 누가 뭐라 해도 맥주와 빵입니다. 맥주와 빵은 기원전 5000년, 식초는 기원전 1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가리아의 요구르트, 프랑스의 레드와인, 스위스의 치즈, 이탈리아의 안초비 같은 것들은 이미 세계적인 발효식품이 되었지만 발효 저장식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의 솜씨는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으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뿐 아니라 김치류, 장아찌류, 젓갈류, 식초류, 곶감, 시래기, 무말랭이, 말린 나물 등속이 모두 우리 고유의 저장 발효식에 해당하니 면이 바다로 에워싸인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음식과 영양을 배려한 우리 조상의 지혜에 새 경외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어떤 농어업예술전시회에 60년 동안 발효된 간장이 출품되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발효되었으니 식품이 아니라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입니다. 1.5kg의 그 간장 가격이 5000만 원으로 책정되었음에도 관심을 보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컨대 건강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신선도를 중시하던 식문화에서 발효저장식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생물은 발효를 통해 원래의 재료에 없던 물질을 생성해 건강을 이롭게 하고, 발효를 일으키는 유익균은 장운동을 원활하게 해주고 면역력까지 높여 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기체들은 다섯 가지 초왕국(Super-kingdom)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미생물, 세균, 식물, 동물, 곰팡이가 그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10의 17제곱 개의 세균세포로 이루어진 소우주입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구름같이 떠 있는 세균의 집합체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온갖 것들을 먹고 살지만 죽어 땅에 묻히면 곰팡이에게 잡아먹혀 씻은 듯 사라집니다. 곰팡이는 청소부처럼 다른 생물을 분쇄하여 미생물이나 세균들로 환원시킵니다. 세균은 섭취 능력이 없는 단세포이지만 미생물은 , 섭취, 흡수 능력이 있어 최소 단위의 생명활동을 영위합니다.

곰팡이에게 먹히고 미생물과 세균으로 환원하는 인간의 육체성에서 생물학적 윤회를 읽습니다. 그렇게 보면 미생물-세균-식물-동물-곰팡이는 모두 하나의 사이클 안에서 돌고 도는 영원한 생명의 연대인 셈입니다. 만물이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할 때, 우주적 발효는 완성되고 생명연대는 일체감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발효음식을 먹을 때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서로 나누고 이바지하는 무구한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발효하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