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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pite of the rain ……

수로보니게 여인 2009. 7. 14. 19:31

 


 In spite of the rain ……

  

  1972년  최초의 평생교육기관으로, 서울대학교 부설한국방송통신대학교 5개(가정학, 경영학, 농학, 초등교육학, 행정학)학과로 원격 스쿨링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20만여 명의 재학생이 본부와 13개 지역대학 22개 학과에서 통신망 학습과 교류로 학우애를 이어가는 중 500여명의 국문학도들이 면대면 만남을 이룬 것이다. ‘2009 한마음 학술제’라는 축제의 이름으로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 축제의 자리가 더욱 소중한 의미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여러 교수님들께서 축하의 마음들을 엮어 얹어주신 까닭이다. 

 축복의 마음을 펼쳐주신 교수님은 좌로부터 박종성 학과장님(비교문학), 이동국 학장님(영문학), 조남철교수님(현대문학), 박태상교수님(북한문학), 이호권교수님(중세국어), 고성환교수님(현대국어), 손종흠교수님(고전문학)외 세분의 조교수님께서 참여해주셨고, 역대 동문회장님들이 함께 축복해주셨다. 이상진교수님께서는 외국출타중이라 마음만 전해오셨단다.    

 

    우리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저마다의 꿈과 열정을 꺼내 알록달록 안고지고 ,          

     어떤 이는 비행기로~, 또 어떤 이는 열차로 동서사방에서 구름떼(쬐끔 과장)처럼 몰려들었다  

       

     손종 교수님의  한 미소       

 

 열정을 품은 이들의 얼굴엔 힘든 여정에서 있었을법한 피로의 모습을 한 점도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마음을 표현하는 해맑은 미소만 아이들의 순전한 그 것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있을 뿐.  아이     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가 주최하고

    서울지역대국문과와 경기지역대국문과가 주관하는 ‘2009 한마음 학술제,

      진실로 ‘방송대인의  이라 이름 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시간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개회식 전 순서로 비보이 공연, 고교생들로만 구성된 그룹이란다.

 

      높다란 무대를 구르고

   넓은 무대만큼의 가슴으로 사고하며 

 

개개인의 가치관대로 세상을 살아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갈 마음의 몸짓 그리고 몸짓들  팔방  

 

 젊은이들이여  “꿈꾸라, 더욱 불가능한 꿈을(선덕여왕에서 천명이)”  ……  

 

비보이 공연 : 비보이의 경우 비보이의 비(B)가 의미하는 것은 브레이크 댄스를 가리키는 말이며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

                      는 사람을 비보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며 의미를 몰라 사전을 검색했다. 70년대 초부터 전해 내려오는 춤이라는데

                      이제야 아는 나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참여율이 곧 졸업율이다”라는 학장님과 교수님들의 격려 가득한 축사에 이어 각 동아리의 장기자랑  

 

 

    작품제목 
         나쁜 할아버지 얘기 팔방   바람만 피우다 집에 들어와서는 아들들 관리 못했다고 할머니를 괴롭히고……  

                지금 그런 드라마를 봤다. 이름 하여 ‘밥 줘’     

 

자기가 사랑인 걸 몰랐었는데 이제 알았다며 ‘자기야 ’를 열창하는 어느 학우  

 그녀의 열창 못지않게 시선을 사로잡던 백댄서의   , 진행하던 학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재담까지  

 

 끼로 똘똘 뭉친 학우들이 펼치는 갖가지 장기로, 긴장됐던 여정을  우리도  팔방 풀어헤쳤다.

  한과, 해학과, 꿈과, 열정이 담긴 마음속 보따리를 거기 ‘2009 전국 한마음 학술제’라는 마당위에

 

   그리곤  하며 갈고 닦은 학문을 꺼내 겨루는 ‘경진대회’

 

    좌로부터 박종성 교수님, 박태상 교수님, 이호균 교수님, 고성환 교수님께서 심사위원으로 자리하셨다.

        아직도 남아있는 학우들의 열기가 도가니 되어, 교수님들이 푸욱 파묻히고도 남을 환호 속에 

 

   

갈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친 학문이 좀처럼 가려지지 않아 준비하신 대회문제는 바닥나고, 문제 급 출제 하시느라 고민 중

  

 선수로 발탁되지 못한 우리는 렌즈 속 추억이라도 남기려고     

  기회 포착……

활을 당기어 콧물을 씻는다는 속담을 헛되게 할 수 없어  

 

   놀이패 ‘빠가사리와 쪼간네’ 란다. 분장이 예사롭지 않은데 연스팀인 듯…

        

   김월호, 주점숙, 황희숙, 김용의, 고혜순, 김미경, 박남옥, 오지정, 이영숙, 조미애, 최순옥, 한경선, 홍희자, 선배님과  

     곽재경, 김성옥, 김은주, 지순이, 이명수 동기학우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기억이 하얘져서 아니 함께한 이들의 을 알지 못해 연스에 가서 명단을 통째로 들고 왔다.  

   조남철 교수님과의 간담회 시간

 

    ‘개인의 노력만큼 수확한다.’ 는 우리 대학의 특성을 말씀하시며

    “선배들의 경험에 의한 시행착오를 학생회를 통해 배워가라.”

    “앞서간 선배들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손을 만들어야 한다.”

    “역으로 내 손을 펴서 누군가를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방송대라는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이들인 만큼 지엽적이거나 지역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시며 옆 학우의 손을 잡으라신다.

   말씀에 따라 우리는 손을 잡았다. 항구에 이를 때까지 서로의 마음이 이 시간처럼 흐르기를 기대하며  

 

질문 그리고 답  


 평일 출석에 관해 : 비율로 설정. 생활인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애로를 감안, 그러나 학교 행정 시스템

      적 문제로 계속 고민하는 있는 문제이다.

 시험을 2일에 나누어  볼 수는 없는지: 시험장소 및 수험생(직장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학교 측에서 고민

      하고 있으며 해결해야하는 과제이다. 학생 수가 적은 학과는 주관식으로 시범적으로 시행중이다.

      앞으로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겠으나 시급히 이루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오디오와 멀티미디어강의에 대해: 장단점을 수정‧보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이
      다. 학사행정체제가 생소하므로 학사일정을 테스트, 시험을 통과하면 1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입
      쉽다고 졸업이 쉬우면 안 된다) 일정 수준의 능력(학습)을 배양 시킨 후 졸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F학점을 받았다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점수와 상관없이 공부한 만큼 지식이 남아있

      기 때문이다.”


 “보내는 시간들이 의미로 남기 위해서는……

 

      ‘졸업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중요’한 만큼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라시며,

      '목적보다 방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시던 따뜻함'은  

 

 좌충우돌하는 초년병들의 마음에 한 박자 여유를 주셨고 우리의 배가 항구에 이르기까지 ‘돛대 등’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09학번 연스 스터디 속에 나도 살짝 끼어서   순이 왈, 재경 씨와 명수 학우님은 완전 생이란다.  

 

 

구리에서 서예학원을 하신다는 홍재인 언니, 경시 때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담론하던 열정이 충만한 언니를 만난 것 역시 큰 기쁨이다.

** “三伏의 ‘복’자는 엎드릴 ‘伏’자인데, (견☞개)가 사람인((=)☞사람)옆에 엎드리고 있는 모양으로, "무엇이 엎드려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이 해독되지 않아 이호균 교수님을 쫒아가 답을 얻어내기까지 했다. 기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만남이다.

   

살곶이 다리를 거쳐 동구릉으로 기행을 떠나는 날 아침이다. 

아침 7시까지 환담을 나누던 선후배의 열정을 게릴라성 폭우도 식히질 못했다.

출발 전 간밤의 애애했던 순간을 다시 나누며 

        검은 봉지를 든 대 선배님은 우리의 먹을거리를 챙겨 뒤룩뒤룩 불편을 감수하고 계신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 비닐봉지보다 더 뒤룩뒤룩하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선배님   팔방   해요

 

 It is raining in torrents     

 

   폭우를 뚫고 드디어 살곶이다리 도착 

   잿빛하늘아래라서 더 초연한 모습은, 그저 그렇게 누운 채 오는 이들에게 조선의 유구함을 전하는듯했다. X 100

 

 

   폭우도 아랑곳 않으시는 손종 교수님의 역사 강의

   차량을 몇 대에 나누어 이동함에 따라 한 번에 도착하지 못한 관계로 두 번에 이어 강의를 하셨다.

   에고 못 말리는 프로정신(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학우들을 염두에 두신 마음이시리라)

 

 

전곶교[살곶이다리, 살곶이 다리]한국어 위키백과

전관교(箭串橋)는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강릉충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사용되던 다리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돌다리 중 가장 길다.


살곶이는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역으로, 한양대학교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울 부근이다. 이곳은 넓고 풀과 버들이 무성하여 조선 초부터 국가의 말을 먹이는 마장(馬場) 또는 군대의 열무장(閱武場)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다리를 만든 것은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이었다. 세종 즉위 후 태종은 광나루에서 매사냥을 즐기고, 살곶이에 있는 낙천정(樂天亭)과 풍양이궁(壤離宮)에 수시로 행차하였다. 따라서 이곳의 하천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하여 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 2년(1420) 5월 태종은 영의정 유정현(柳廷顯)․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비로소 돌다리 세우는 공사를 담당하게 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세종 4년(1422)에 태종이 죽자 이곳을 통한 행차가 거의 없어지고, 또한 세종 3년부터 시작된 도성 안 개천(開川)․제방축조공사로 인해 도성 밖 이곳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이용하는 백성들로 인하여 살곶이다리를 만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어, 성종 6년(1475) 9월 살곶이다리를 완성시킬 것을 양주목(楊州牧)에 명령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考)≫에 따르면 성종 13년(1482) 한 승려가 방법을 고안하여 다리를 완공하자, 왕이 이를 치하하고 다리가 집과 같이 평평하여 마치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 하여 ‘제반교(濟盤橋)’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살곶이다리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장석판교(長石板橋) 중 가장 큰 규모의 다리로서, 가로로 놓인 기둥이 4열, 세로로 16열에 모두 64개의 돌기둥으로 만들어졌다. 다리 높이는 하상(河上)으로부터 10척 내외이며 기둥의 높이는 4척 가량이다. 좌우의 교안(橋岸)을 장대석(長臺石)으로 쌓고 네모난 돌기둥 교각 16개소를 세웠다. 교각의 간격은 대략 11~13척 정도이며, 돌기둥 위를 3장의 장대석을 건너지른 다음 그 위에 다시 귀틀돌을 놓아 청판돌을 받게 한 구조이다. 기둥돌 아래에는 물밑의 받침돌이 네모난 주춧돌을 지탱하고 있으며, 주춧돌 사이에는 포석을 깔아 기초를 단단히 하였다. 따라서 물이 줄 때는 이 포석 면이 드러나 마치 지금의 잠수교와 같아 ‘이층다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돌기둥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큰 혹띠기로 표면을 가공하였고 조립할 때 잔돌을 많이 사용하여 뜬 곳을 메꾸었으며 돌난간은 없다

고종 때 경복궁(景福宮)을 중건하면서 살곶이다리의 일부를 가져다가 석재로 썼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1913년에 다리 윗면을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보수하였으며, 1920년대 서울 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다리 일부가 물에 떠내려간 채 방치되었다. 그 후 1938년 5월에 이 다리 옆에 성동교가 가설되자 이 다리는 방치된 채 최근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1972년에 서울시가 무너진 다리를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하천의 폭이 원래보다 넓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리 동쪽에 27m 정도의 콘크리트 교량을 잇대어 증설함으로써 원래의 모양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강의를 메모하지 못한 까닭에 사전검색을 했다. 강조하시던 내용은 기억나는 대로 및 줄 쫘악 

  


 

동구릉(東九陵)  

 

    종 목 : 사적 제193호 
    명 칭 : 동구릉(東九陵)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1,915,891㎡ 
    지 정 일 : 1970.05.26 
    소 재 지 :경기 구리시 인창동 산2-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동구릉관리소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을 세운 태조의 무덤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족무덤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무덤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철종 6년(1855)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은 서울 가까운 곳에 후손들이 묻힐 좋은 땅을 찾다가 하륜(河崙)에 의해 이곳을 무덤지역로 정하였다고 한다. 400여 년에 걸쳐 왕릉이 자리잡았음은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 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동구릉에는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인 현릉, 14대 선조과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무덤인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무덤인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무덤인 숭릉,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무덤인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 추존 문조대왕과 신정왕후의 무덤인 수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무덤인 경릉 등 9개의 무덤이 있다.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을 기본으로 아서 만들었으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으로서 이후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

동구릉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중앙 북쪽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5개의 무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의 왕릉 중 한 지역내에 왕릉군을 이루고 있는 곳은 서오릉과 서릉이 있으나, 동구릉에 가장 많은 무덤이 있다.

 

 의미 있는 문학기행을 한다는 황홀감에, 졸지에 상식 없는 여자들이 되고 말았다.

         배치도를 뒤에다 두고 섰는 모양새가 에구  쯧쯧쯧    

 

          올라가다말고 이끼가 깔린 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한 컷

          세월을 줍고 역사를 담는 마음으로…… 

     동아리 ‘현운제’ 선배님과도 한 컷

       나처럼 깍두기로 참석하셨다던   

 

      9기의 능 앞을 휘휘 도는 계곡은 심장을 흐르는 동맥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오가며 우리의 영혼을 풀무질하고 있다.

       제 모습처럼 묵묵히 세상을 흐르라며  

 

 

  

  

 

조선 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9년 6월 26일(현지시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 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


유네스코는 등재 평가 보고서에서 조선 왕릉에 대해

▶ 유교·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 양식의 세계유산적 가치가 충분하며

▶ 제례의식 등 무형의 역사적 전통이 이어지고

▶ 조선 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관리되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왕조 500여 년 왕위에 오른 사람은 27명이다. 이 중 10대 연산군, 15대 광해군은 폐위됐다. 그래서 그들의 무덤은 왕릉이 아니다. 대신 나중에 왕·왕비로 추존돼 무덤이 왕릉으로 격상된 경우가 다섯 차례 있다. 성종·인조·헌종 각각의 부모가 그랬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의 부모도 있다.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는 훗날 장조·헌경왕후로 추존됐다. 정조는 양아버지도 있다. 영조의 맏아들이자, 9살 어린 나이로 숨진 효장세자다. 사도세자가 숨진 뒤, 영조는 훗날의 정조인 세손을 죽은 맏아들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를 잇게 했다. 정조로서는 큰아버지가 양아버지가 된 셈이다. 이런 왕·왕비의 무덤을 모두 합하면 42기다. 이 중 태조 이성계의 원비 신의왕후가 묻힌 제릉과 2대 정종의 후릉은 북한 개성에 있다. 2기를 제외하고 남한에 있는 40기 전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출처: 오픈스토리 

11539

 

 

 

In spite of the rain ……

 

이로써 11~12일에 걸쳐 우리의 심장을 풀무질한 ‘2009 한마음 학술제’를 모두 마쳤다.

게릴라성 ‘폭우도 잠재우지 못하는 국문학인의 열정’ 이라는 부제를 남겨두고 

 

    이 밤 … ……   

    ‘ 참석한 모든 학우들   이야요,  모두 사랑’  라고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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