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11] '호질(虎叱)'의 행간
입력 : 2009.07.09 22:19
'호질'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인 옥전현(玉田縣)을 지날 때, 심유붕(沈有朋)이란 이의 점포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베꼈다는 글이다. 작품 서두에서 범은 영특하고 거룩하고 문무를 갖추었으며, 자애와 효성, 지혜와 어짊을 지닌 용맹하고 웅장한 천하무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범조차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비위와 죽우(竹牛), 자백(玆白)과 맹용 같은 짐승들이 그것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넋이 창귀가 되어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그들의 이름은 굴각(屈閣), 이올(彛兀), 육혼 등이다. 무슨 말인가?
범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청나라 황제의 존호(尊號) 앞에 붙는 표현을 조금 바꿔 조합했다. 범은 청나라 황제의 은유다. 그 대단한 범조차 두려워 떨게 만드는 비위와 죽우, 맹용 같은 짐승들은 티베트, 몽골, 신장 등의 북방 이민족이다.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창귀는 한족(漢族)의 지식인들이다. 작품은 범이 밤중에 사람 고기를 먹으러 산을 내려왔다가 위선적 지식인인 북곽 선생을 만나 그 가증스러운 요설에 일장 훈계로 일갈하고, 더럽다며 먹지도 않고 떠나버린다는 내용이다. 연암은 작품 뒤에 따로 한편의 글을 더 남겨, 당시 청나라의 고민을 겹쳐 읽었다.
'열하일기' '반선시말(班禪始末)'에서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판첸(班禪) 라마에게 몸을 낮춰 경배하는 청 황제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 황제가 열하까지 온 것은 "뇌를 누르고 앉아 몽고의 멱통을 틀어쥐려는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또 "티베트(西番)는 특히나 사납고 추악해서 괴수처럼 기괴하니 두렵다. 회자(回子)는 옛날의 위구르인데 더더욱 사납다"고도 했다. 당시 청나라가 이들 북방 민족을 자신들의 통제력 안에 두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었는지 연암은 '열하일기' 곳곳에서 명쾌하게 풀어 보였다.
당시 청나라의 이러한 고민은 지난 올림픽 때 티베트 사태나,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최근 발생한 유혈사태에서 보듯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몽골, 티베트, 신장은 여전히 중국의 화약고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당시 국제정세의 행간을 탁월하게 읽어낸 연암의 혜안이 새삼 놀랍다.
범(호랑이)은 모든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무인다우며, 인자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며, 기운차고 날래며, 용맹스럽고 사나워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그러나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격으로 비위( 胃), 죽우(竹牛), 박(駁), 오색사자, 자백, 표현, 황요 등은 호랑이를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활이란 동물은 뼈가 없는 관계로 호랑이가 꿀떡 삼켜 버리면 뱃속에 들어가서 그 간을 떼어 먹으며, 추이(酋耳)란 짐승은 호랑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무서워서 눈을 감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무서워한다. 어쨌든 그 위엄이란 굉장하다.
범이 개를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고 범이 사람을 한번 잡아먹으면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범을 남의 집 부엌에 인도하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 주인이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 하게 되면 두번째로 그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러면 이올이란 귀신이 되어서 호랑이의 볼에 붙어 다니며 모든 것을 잘 살핀다. 만약 산골짜기에 이르러서 함정이 있으면 먼저 가서 위험이 없도록 차귀를 풀어 놓는다. 호랑이가 세번째로 사람을 잡아 먹으면 육혼이란 귀신이 되어서 늘 턱에 붙어서 그가 평소에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댄다.
어느 날 범이 이 세 귀신을 불러 놓고 하는 말이,
"오늘도 곧 날이 저무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냐."
하니 굴각이 대답하기를,
"제가 전에 점쳐 보았더니 뿔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 머리를 가진 것이 눈 위에 발자국이 비틀비틀 성긴 걸음,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하고 다음에 이올이 말하기를,
"동문에 먹을 것이 하나 있는데, 그 놈의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의원(醫員)은 약초를 다루고 먹으니 그 고기도 별미(別味)인 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서문에도 먹음직스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당 계집입니다. 그 계집은 천지 신명께 온갖 미태(媚態)를 부리고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여 깨끗하고 맛있는 계집이오니 의원과 무당 계집 둘 중에서 골라서 잡수시길 바라옵니다."
하니, 범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도대체 의원이란 무엇인가? 의(醫)란 의(疑)가 아니더냐? 저 자신도 의심스러운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하여,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 넘는다. 또한 무당이란 것이 무엇이냐. '무(巫)란 무(誣)라고 하지 않더냐? 결국 무당이란 공연히 뭇 귀신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하고 있으니 이로 인하여 터무니없이 목숨을 잃는 자가 해마다 수만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그들의 뼈 속에까지 스며들어 금잠이란 벌레가 되어서 그들의 뼈 속에서 득실거리고 있단 말이야. 그러한 독기가 있는 것을 어떻게 먹는단 말이냐."
했다. 이에 육혼이 또 말한다.
"어떤 고기가 저 숲속에 있사온데 그는 인자한 염통과 의기로운 쓸개며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악은 머리 위에 이고 예는 신처럼 꿰고 다닌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입으로 제자(諸子)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큰 덕망을 지닌 유학자)라 하옵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답니다."
하였다.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내리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면서 말한다.
"짐(朕)이 이를 좀더 상세히 듣고자 하니 자세히 말하라."
했다. 그러자 모든 창귀들이 서로 다투어 가며 범에게 말하였다.
"음·양을 도(道)라 하옵는데, 저 유가 이를 꿰뚫으며 오행(五行)이 서로 얽혀서 낳고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는데,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먹어서 맛이 있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범이 이 말을 듣고 문득 추연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아니야, 저 음·양이란 것은 한 기운의 생성과 소멸에 불과하다거늘 그들이 두 가지를 겸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오행이 각기 제 자리에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이제 그들이 구태여 자·모로 갈라서 심지어는 짜고 신맛을 들여서까지 분배시켰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것이며, 육기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어서 남이 이끌어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이제 그들이 망녕되어 재성·보상이라 일컬어서 사사로이 제 공을 세우려 하니, 그것을 먹는다면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서 순하게 소화가 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지껄이기를,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매, 북곽 선생은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는 것이 아닌가.
鴛鴦在屛(원앙재병)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경경유형)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뤄
維 維錡(유심유기)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維之型(운유지형)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興也(흥야) 흥야랴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대.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꾐을 받을 수 있다더라. 우리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갖도록 하자."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모가지를 두 다리 사이로 들이박고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외면을 했다.
"어허, 유자(儒者)여! 더럽다."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우러러 아뢴다.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죄다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오륜(五倫)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내내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도회지에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이로 보면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범의 도리가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노루나 사슴은 은공이 없고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다 저버리고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희가 죽어서 나의 밥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은즉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벌을 막고 꿀을 따며, 심한 놈은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조상에게 바치니 잔인 무도한 것이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범이 일찍이 표범을 안 잡아먹는 것은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춘추 시대에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그래서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버려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범의 세계는 큰 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우리 몸의 얼룩 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종이(宗彛)와 유준( 尊)은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대궁을 남겨 주니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노루 망(網)·큰 그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 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천지에 불꽃을 쏟아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아교에 붙여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목욕 재계(齋戒)하면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토의 천신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니다."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오랫동안 아무 동정이 없기에 참으로 황공해서 절하고 조아리다가 머리를 들어 우러러보니,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범은 간 곳이 없었다.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하셨느니라."
연대 : 조선 영조 때
작자 : 박지원
갈래 : 한문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풍자적
주제 : 양반 계급의 허위적이고, 이중적인 도덕관을 통렬하게 풍자적으로 비판
특징 : 인간의 부정적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고, 등장 인물의 대화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고 있고, 서술자의 개입을 통해 등장 인물
을 소개하고 있으며, 가상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환상적 수법을 사용하공 있다.
줄거리 : 대호(大虎)가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사를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이 때 고을에 도학 ( 道學 )으로 이름이 있는 북곽선생(北郭先生)
이라는 선비가 동리자(東里子)라는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였다. 그녀의 아들들이 북곽선생을 여우로 의심을 하여 몽둥이
를 들고 어머니의 방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그만 어두운 밤이라 분뇨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기어나오니 이번에는 큰 호랑이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
비라 탄식하며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
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만 주위에 서서
그의 행동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그는 농부에게, 자신의 행동이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출처 : '연암외전(燕巖外傳)'
내용연구
구성 : 순차적 구성
단계 |
내용 | |
1부 |
1 |
범은 지혜, 용기, 덕을 갖추었지만, 제일 강한 짐승은 아니다. |
2 |
그러나, 사람들은 범을 제일 무서워한다. | |
3 |
하루는 범이 창귀들을 불러 먹이를 의논한다. | |
4 |
창귀들이 의사, 무당, 선비를 먹이로 추천했으나, 거짓된 자들이므로 맛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 |
2부 |
5 |
어느 고을에 존경받는 선비 북곽 선생과 열녀로 소문난 과부 동리자가 있었다. |
6 |
어느 날 밤, 북곽 선생이 동리자와 방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그녀의성이 다른 다섯 아들에게 들켰다. | |
7 |
다섯 아들은 여우가 북곽 선생으로 둔갑하여 어머니를 유혹한다고 생각하여 이를 잡으려고 했다. | |
8 |
북곽 선생은 도망을 하다가 똥 구덩이에 빠진다. | |
3부 |
9 |
구덩이에서 나온 북곽 선생이 범과 마주친다. |
10 |
더럽다고 외면하는 범에게,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려 아첨하며 살려 주기를 간청한다. | |
11 |
범은 선비들의 잘못된 형식 논리, 인의도 없고 잔혹한 인간의 소행 등을 장황하게 꾸짖는다. | |
12 |
북곽 선생은 꿇어앉아 오래도록 빌고 있다가, 머리를 들어 보고 범이 사라진 것을 안다. | |
13 |
새벽에 밭 갈러 나온 농부를 만나자, 다시 근엄한 선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
심화자료
호질(虎叱)에 대해서
조선 후기에 박지원 (朴趾源 )의 연행일기인 ≪열하일기≫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실려 있는 〈호질〉은 작품 글 뒤에 붙인 박지원의 논평을 통하여 만주족의 압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 : 道에서 벗어난 학문을 닦아 세상에 아부함.)하는 중국 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원래 중국의 어느 무명작가의 글을 연암이 약간 가필한 것이라 한다.
〈호질〉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사정에 비추어 두 가지 주제의 설정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자(儒者)들의 위선을 비꼰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 행위를 폭로한 것이다.
특히, 유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호랑이가 강상(綱常 :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의 윤리를 절대당위로 조작한 북곽선생을 꾸짖은 것은 유가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호질〉의 구성에 있어서 연암은 음란한 곳의 대명사가 된 정(鄭)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산·집·들판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황혼이 되어 음험한 계략이 꾸며지고, 밤이 되어 음란한 행위가 연출되며, 새벽이 되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극한상황으로 이어지다가, 아침이 오자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산에서 육혼이 유자를 추천한 것은 들판에서 북곽선생과 호랑이를 만나게 하기 위한 복선이었으며, 들판의 분뇨구덩이는 호랑이가 북곽선생을 잡아먹지 않는 상황에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다.
〈호질〉은 그 형식에 있어 전기체를 완전히 탈피하였으나 순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된 이 글은 연암 스스로도 절세기문(絶世奇文)이라 평가하였다.
≪참고문헌≫ 燕巖集, 燕巖小說硏究(李家源, 乙酉文化社, 1965), 虎叱의 作者와 主題(李佑成, 創作과 批評 11, 1968), 虎叱硏究(黃浿江, 韓國小說文學의 探究, 一潮閣, 1978).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암의 문학관과 소설
연암은 당시 사대부들이 숭상하던, 당송 팔대가의 문장을 본뜬 고문의 문체를 거부하였다. 그는 '고문이란 옛적에 있어서의 일상적 언어를 기록한 것으로서, 참다운 문학의 길은 이미 화석화되어 버린 옛말과 경험을 답습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시대와 경험을 살리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대적 변화를 전제로 현실을 중시하는 문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현실에서 소재를 택하여, 실생활과 거리가 먼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였다. 아울러 그는 문학에서 중국적 형식과 내용을 추종하는 인습을 비판하고 우리의 풍토와 역사,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 우회적으로 혹은 반어적으로 조명하는 소설에 가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