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고황
'고(膏)'는 가슴 밑의 작은 비계를 가리키고, '황'은 가슴 위의 얇은 막을 말한다. 대개 명치 부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옛날부터 이 부위에 병이 들면 고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침을 놓기도 애매한 자리이고, 그렇다고 약으로 고치기도 어렵다.
'천석고황'이란 '천석(自然)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고황과 같은 고질병의 상태에 도달함'을 말한다. 오직 산수를 좋아했으면 '천석고황'이라고 표현하였겠는가! 이런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은 세속에서 출세하고 벼슬하는 것보다 한 발짝 물러나 대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퇴계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제1곡에서 이렇게 읊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게 산다 해서 어떠하리오. 하물며 천석고황을 고쳐 무엇 하리오!" 국내에서 여기저기 다녀 본 누정(樓亭) 가운데, 옛사람들이 이야기한 천석(泉石)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정자가 예천군 보문면 죽림리에 있는 초간정(草澗亭)이다.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1582년에 계곡 옆에 지은 정자이다. 권문해는 바로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저자이다. 초간정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정자 바로 밑에 커다란 검정 보석처럼 솟아나 있는 바위들이었다. 계곡이 'ㄱ'자로 휙 꺾여 돌아가는 지점에 정자를 앉혔는데, 이 꺾이는 부분에 자연 암석들이 솟아나와 있다. 뾰쪽뾰쪽하면서도 단단한 고체 덩어리의 느낌을 주는 바위가 단단하게 뿌리박고 있다.
그 암석 사이를 맑은 계곡물이 통과하는 장면을 정자에 앉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이다. 마치 작은 수석(壽石)을 수백배 확대시켜 놓은 장면 같다. 방안에 있는 수석이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면, 초간정 밑에 내려다보이는 암석들은 호랑이를 보는 것과 같다. 선비는 암석을 보면서 자신의 포부와 의지를 강화시켰다. 바위를 보아야만 강건한 기상이 생긴다. 거기에다가 부드러운 물이 그 바위를 애무하면서 졸졸졸 흘러가는 모습은 삶의 이치를 이야기해준다.
이 봄날에 한 번쯤 '천석고황'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2008.03.26 22:26 조용헌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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