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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각질
애초 내가 맡은 일은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도화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었다.
부러진 가지 끝에 잎이 달렸을까 이 기와 끝으로 매달린 것이 하늘이었을까
하루 이틀 상상하는 일을 마치고 처음 한 일은 붓으로 벽을 터는 일이었다.
벽에다 말을 걸 듯 천천히. 도저히 겹쳐지지가 않는 다른 그림이 나왔다.
누군가 흰 칠을 해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여
벽 한 귀퉁이를 분할한 다음 붓으로 다시 열흘을 털었다. 연못이 그려져 흐르고 있었다.
다시 다른 구석을 닷새를 터니 악기를 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성지기가, 죽은 물고기가 올려져있는 천칭의 한 쪽 모습도 보였다.
흰 칠을 하고 바람이 지나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지워지면 다시 흰 칠을 하여 그림을 올리고,
다시 흰 칠을 하고 그림을 그려 흰 칠과 그림이 누대를 교차하는 동안, 강이 불어나고 피가 튀고
폭설이 내려 수천의 별들이 번지고 내밀한 것처럼 밀리고 씻기고 쓸려져 말라갔던 벽.
벽을 찔러 조심스레 들어내어 박물관으로 옮기면서 육백여 년 동안 그려진 그림이 수십 겹
이라는 사실에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나는 가매지고 무거워진다.
책 냄새를 맡는다. 살 냄새였던가. (<현대문학>200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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